"남편은 살림하고 저는 당구만 쳤어요".. 또 꿈 이루다
’캄보디아 댁‘ 스롱 피아비, 프로당구 여자부 최다 우승 기록(6회)
“남편이 너무 고마워요. 제가 당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 살림을 다해주고 있어요.”
’캄보디아 댁‘ 스롱 피아비(33·블루원리조트)는 9일 프로당구 여자부 최다 우승 기록(6회)을 세운 순간, 남편 얘기부터 꺼냈다. 이날 경기장에 다녀 간 것을 뒤늦게 안 그는 “남편이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28세 연상의 남편 김만식씨(61)가 아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먼 곳에서 경기를 본 후 조용히 사라진 것이다.
“남편이 온 줄도 몰랐어요... 남편이 자리를 피해서 같이 우승 사진도 못 찍었어요. 지난 5∼6년 동안 한 번도 남편이 제 경기를 직접 본 적이 없어요. 제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처음 온 것입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남편은 오늘의 스롱 피아비를 있게 한 최고의 동반자다. 20세까지 캄보디아에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던 스롱은 한국에 온 후 남편을 따라 처음 당구장을 찾았다. 아내의 당구 재능을 발견한 남편은 대회 출전 비용을 지원하며 선수로 나설 것을 권유했다. 수준급 당구 실력을 갖춘 남편은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며 기량 향상에 도움을 줬다. 아내의 경기력에 방해가 될까 봐 요리, 청소 등 가사도 도맡아 했다.
스롱은 9일 열린 프로당구 2023-2024시즌 2차 투어 ‘실크로드&안산 PBA-LPBA 챔피언십’ 여자프로당구(LPBA) 결승에서 세트 스코어 4대 3(6-11 11-3 11-4 5-11 11-7 7-11 9-2)으로 용현지(하이원리조트)를 꺾고 우승컵을 안았다(경기도 안산 상록수체육관). 이로써 통산 여섯 번째 우승으로 LPBA 최다 우승 역사를 썼다. 우승 상금은 2000만원. 지금까지는 김가영(하나카드)과 임정숙(크라운해태)이 세운 5회 우승이다.
스롱 피아비는 “제가 대회에 다니느라 한두 달에 한 번씩 집에 갈 때도 많다. 남편은 집에 혼자 있는데, 갈 때마다 뭐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요리도 해준다. 당구에만 집중하게 해준다"고 했다. 남편은 처음 인쇄업을 했지만 당구장을 개업해 아내의 훈련 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둘 사이에는 아기가 없다. 남편이 먼저 나이 차가 많은 아내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갖지 말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후 아내의 재혼 생각까지 해 둔 것이다. 남편은 장인-장모를 한국에 초청해 여행은 물론 건강검진 및 질병 치료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장인은 사위보다 열 살 아래다. 두 사람은 스마트폰 번역기로 대화를 나눈다. 스롱 피아비가 훈련으로 바쁠 때는 둘 만의 낚시 여행을 떠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장인은 사위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딸이 이렇게 잘 된 것은 사위가 딸에게 기회를 만들어준 덕분이라는 것이다.
아내가 당구 상금을 모아 비가 새는 캄보디아 고향 집을 새로 짓겠다고 하자, 남편은 빙그레 웃었다. 매번 상금을 받아도 자기 옷을 사는 대신 부모님께 승용차 등을 사드렸다. 남편은 이를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했다. 스롱은 ‘캄보디아의 김연아’다. 유명인이 된지 오래됐다. 그 덕분에 캄보디아에도 당구 열풍이 일고 있다. 각종 행사가 많아 남편이 대신 가는 경우도 있다. 남편도 캄보디아 TV에 자주 나와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꽤 있다.
부부를 말할 때 ’반려(伴侶)‘라는 표현을 쓴다.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 하는 짝이라는 의미다. ’동반자(同伴者)‘는 짝이 되어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는 사람을 말한다. 김만식-스롱 피아비 부부는 천생 ’반려자‘인 것 같다. 한국과 캄보디아 먼 곳에서 태어났지만 생각이나 행동은 늘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