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 표어 vs 멋진 그림, 어느 병원에 갈까?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병원의 예술공간
식당에 가면 간혹 벽에서 주메뉴의 효능을 큼지막하게 써 붙인 안내문을 볼 수 있다. 추어탕 집에선 미꾸라지가 왜 좋은지 설명해 놓았고, 곤드레나물밥 집에선 곤드레의 효능과 먹는 방법을 써 놓았다. 과연 그 설명문을 몇 명이나 읽을지 궁금하다. 추어탕 집에 오는 손님은 추어탕을 먹겠다고 온 것인데, 그에게 ‘추어탕이 몸에 좋으니 꼭 드세요’라고 권유하는 것과 같다. 또 설명문 그대로 먹는 사람도 많지 않다. 사람은 별난 특성이 있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음식을 먹으려 하기 때문이다. 뜬금없지만 설명문 대신 멋진 명화 한 점이 식당의 분위기나 주인의 철학을 느끼게 해 줄 때가 많지 않을까 싶다.
병원은 어떨까? 예전에 병원 건물은 위압적이었고 상당히 황량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로 미술품들이 설치됐다. 건물 입구에 커다란 조각품들이 세워졌고, 1층 로비에도 조각품들이나 대형 유화가 자리 잡았다.
대기업 건물의 1층 로비에 걸린 ‘21세기로 나아가는 초일류 ○○그룹’이라는 슬로건보다는 그림 한 점이 기업 이미지를 훨씬 더 좋게 만든다. 필자가 근무하는 고려대 안암병원 1층에는 강희덕(1948~) 조각가의 작품 ‘치유의 손’과 ‘위로의 손’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그 돌 조각품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려운 수술도 척척 해내는 고마운 의사의 손, 또는 따뜻한 아버지의 손을 떠올리게 하는 그 작품에서 치유와 위로를 받는 사람도 여럿일 것이다.
병원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예술은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병원 복도는 대개 보통 건물처럼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허리 아래쯤부터 회색이나 상아색을 칠한다. ‘암 예방을 위한 건강 상식’ 등이 식당과 비슷하게 붙어 있지만, 그것을 읽어 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 자리에 그림이나 예술 작품을 걸면 어떨까? 외국 호텔에 가면 규모를 떠나 기다란 복도에 다양한 그림들이 붙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수억 원, 수천만 원짜리 그림은 아니어도 마치 미술관을 연상케 한다.
미래의 병원은 그러한 미술관 개념이 필요하다. 이른바 ‘예술 치료(Arts therapy)’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과 현대 의학, 심리 치료 이론, 상담 이론이 통합된 다각적 치료 기법’으로 정의된다. 환자가 직접 창조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질병의 치유에 도움이 되는 기법이다.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공예품을 만들지 않더라도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혹자는 비용을 이야기한다. 그 돈으로 더 좋은 의료장비를 사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림 대여소나 옥션을 이용하면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매월 새로운 그림들로 바꿔 주기에 오래 입원한 환자들도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추상화 등 다양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그 병원에 입원했던 느낌이 어땠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사람들에게서 나온 첫 번째 대답은 당연하게 “내 병이 나아서 다행입니다.”이어야 할 것이다. 그 여러 대답의 끝에 “멋진 그림이나 예술 작품과 함께할 수 있어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라는 소감도 붙어 있다면 병원 공간을 예술관으로 바꾼 효과를 본 셈이다.
미래의 병원은 치료, 건강 증진, 아름답게 죽음을 대비하는 일과 함께 치유 예술관의 소임도 해야 한다. 나아가 작은 음악회,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도 열어야 하고 영화 감상실, 도서관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가 독립적 결정권을 갖고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 만큼 미래의 병원은 할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