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그만두고, 어머니 권유로 '만화가'의 길로
[허두영의 위대한 투병]
1936년 일본 오사카의 한 소학교에서 키가 작고 약해 보이는 곱슬머리 학생이 ‘안경쟁이 꼬마’로 놀림받으며 따돌림 당했다. 지방사투리를 잘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안경쟁이 꼬마’가 그린 첫 만화 ‘핑핑 세이쨩’을 본 친구들은 물론 교사들마저 깜짝 놀랐다. ‘안경쟁이 꼬마’는 금세 학교의 스타가 됐고, 친구들은 다투어 그의 집에 놀러오고 싶어했다.
5년 뒤 진학한 중학교(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당시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개시하면서 태평양전쟁이 극단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군국주의로 찌든 교실에서 만화를 그리다 들켜 교관에게 얻어맞고, 3년 뒤엔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강제수련소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쉬는 시간 틈틈이 숨어서 그린 만화는 친구들에게서 격려를 받았다.
데즈카 오사무(手塚 治)는 서양문물을 일찍 만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카메라와 영사기에 빠진 아버지, 찰리 채플린의 코메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어머니 덕에 오사무는 눈으로 보여주는 상상의 세계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시계가게 아들과 사귀면서 기계, 곤충, 우주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벌레를 좋아했으면, 필명으로 이름 뒤에 벌레 ‘蟲’(충)을 넣은 오사무(治蟲)를 썼을까?
‘만화의 신’ 오사무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기획과 작화를 분담하고 영상기법을 도입한 스토리 만화 ‘신보물섬’(新寶島. 1947),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리본의 기사’(사파이어 왕자. 1953), TV 애니메이션 ‘무쇠팔 아톰’(우주소년 아톰. 1963)은 굵직굵직한 이정표다. 프레임 수를 바꾸는 리미티드 기법, 한 캐릭터가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스타시스템, 문하생에게 작업을 맡기는 어시스턴트 시스템도 그가 처음 시도했다.
의사를 그만 두고 만화가의 길을 걷는 것은 좀처럼 쉬운 결정이 아니다. 오사무는 1945년 오사카 의대에 입학했다. 전쟁에 필요한 군의관을 서둘러 양성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문을 넓혔다. 1952년 의사시험에 합격해서 의사가 됐지만, 유별난 어머니는 만화가를 권했다. 당시 ‘정글대제’(밀림의 왕자 레오)와 ‘우주소년 아톰’ 제작으로 바빴던 그는 큰 고민 없이 의사의 길을 포기했다.
오사무가 품었던 의사의 꿈은 ‘블랙잭’에 통쾌하게 반영됐다. 놀라운 수술 실력을 가진 무면허 천재 의사가 부자에게 엄청난 치료비를 받아내면서, 가난한 환자는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의사 ‘로빈후드’인 셈이다. 의사협회는 면허를 따고 정해진 치료비만 받을 것을 권하지만, 블랙잭은 의사협회를 비웃으며 부자나 범죄자들에게 터무니 없는 대가를 부른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라는 메시지다. 아톰이 일본판 슈퍼맨이라면, 블랙잭은 일본판 배트맨이다.
1988년 급격한 복통으로 쓰러진 오사무는 병원에서 위의 3/4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경화성 위암 4기로, 암세포가 간과 복막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하지만 오사무에게는 위궤양으로 통보됐다. 당시 의사나 보호자들은 암 환자에게는 그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사무는 병실에서 남긴 유작 ‘네오 파우스트’에서 한 환자가 위암인 줄 알고 죽는다는 줄거리를 그렸다.
블랙잭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괴한에게 습격당한 블랙잭은 본인의 상처도 스스로 수술했지만, 말기 암으로 드러누운 오사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블랙잭은 스스로 메스와 바늘을 쥐었지만, 오사무는 연필과 종이조차 부탁해야 했다. 1989년 2월 그의 병실에서 연필과 종이가 사라졌다. 향년 60세. 그 전까지 오사무는 가족과 친구와 간호사에게 계속계속 부탁했다. “제발, 연필 좀 줘”.
[위암] Stomach Cancer. 胃癌
위장의 점막에 생긴 악성 종양이 점막을 뚫고 자라는 질환이다. 입맛이 없어지고 윗배가 불편하고 소화불량과 함께 구토를 자주 느낀다.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되거나, 짜고 신선하지 않은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점막을 지나 림프절을 타거나 위벽을 뚫고 다른 조직으로 빠르게 전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