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에 무리 주는 '열피로', 부채질로 예방하자
열피로(열탈진)는 뜨거운 햇빛과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땀이 많이 났는데도 수분 보충이 원활하지 않거나, 계속 땀을 흘리면서 염분이 적은 생수만 마셨을 때 흔히 일어난다. 단계적으로 피로, 기력 저하, 어지럼증, 두통, 구토, 근육 경련 등이 나타난다. 대개 상체와 머리가 뜨거운데 목은 시원하며, 선풍기나 에어콘 바람을 쐬어도 땀이 계속 나온다.
열피로가 몰려왔을 때의 기본 수칙은 서늘한 곳으로 이동하고 옷을 벗고 물과 바람으로 체온을 낮춰추는 것이다. 노약자나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 기저질환자들은 병원으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 구토증세가 나타나지 않고 의식이 그런대로 뚜렷하며, 빈맥이나 부정맥 없이 심한 고열상태가 아닐 경우 이런 초동대처를 잘 하면 수시간 내에 회복된다.
미지근한 물 샤워나 찬물 세수가 어려울 때 부채나 신문지를 접어서 바람을 만들어 주면 열피로 해소에 상당히 효과적이다. 평소 간편하게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부채(합죽선)를 갖고 다니면서 수시로 부채질을 하면 열피로 예방에 도움이 된다.
다산 정약용은 “움직일 힘을 지녔으되 접혀 있으니, 고요히 바람을 간직하고 있구나” 라고 부채를 묘사했다. 유교 경전 중의 하나인 ≪시경, 詩經≫의 해설서인 ≪시전, 詩傳≫에는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합하여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부채는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채’ 라는 뜻인데, 접부채는 고려시대의 발명품으로 중국(송나라)에 수출까지 했다고 한다. 자외선을 차단하고 바람을 일으키니 열피로 예방에 매우 유용한 건강용품이 아닐 수 없다.
동화약품과 가송재단에 따르면, 냉방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여름나기가 큰 과제였던 그 옛날에 부채는 단옷날(음력 5월5일, 올해는 6월 22일) 무렵에 주고받던 선물로 매우 높은 인기를 모았다. 단오선(端午扇)이라고도 하고 절선(節扇)이라고도 하는 이 부채는, 가혹한 여름의 시작을 마주한 사람들끼리 ‘더위를 무사히 견뎌내자’는 차원에서 주고받았다. 조선시대에는 더운 여름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신하를 아끼는 마음에서 임금이 부채를 하사했다.
건강한 사람은 폭염이나 열대야 속에서 체온 방어기능이 정상 작동하지만 노약자의 경우 체온중추의 방어기능이 떨어져 몸 스스로 대처하는 데 한계에 부닥친다. 더욱이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 질환 환자는 더욱 위험하다. 과로·과음을 하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잔 경우에도 체온 조절과 방어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무더위에 계속 시달리다 보면 체온중추의 조절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인체가 더위를 느끼면 적정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의 수축과 이완이 활발히 이뤄지게 되는데, 이는 하루 동안에 혈압이 들쭉날쭉 오르내리는 ‘혈압 변동’을 일으켜 혈관에 무리를 준다. 심장병뿐 아니라 고혈압·당뇨병 환자들도 급성 부정맥이나 협심증, 뇌졸중 발생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