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마지막 생일 파티’ 할 빈방 있다면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미래 병원의 환자공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는 속담은 자식을 여럿 둔 어버이의 다난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제 시대가 변하면서 이 속담도 현대에 어울리지 않게 됐다.

그러나 자식이 단 1명이어도 어버이는 늘 다난하고, 노심초사하고, 전전긍긍한다. 앞의 속담은 ‘사연 없는 집안은 없다’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아주 행복하고, 잘 살고, 교양이 넘치는 집안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연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다.

나는 1983년에 의사가 됐지만, 내 누나는 병에 걸려 2002년에 48세로 작고했다. 나보다 2살이 더 많았는데 나는 그때 고려대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누나의 병명은 유방암이었다. 누나는 시댁에서 가까운 일산의 A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의료진 모두 이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엄마, 사랑하는 누나가 병상에 누워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깊은 슬픔이 아닐 수 없었다. 1월 7일은 누나의 생일이었다. 나는 전날 병원 원무실에 찾아가 방 하나를 1시간 정도만 빌려 달라고 했다.

처음에 그들은 난색을 보였다. 환자로 넘치는 종합병원에 빈방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나의 간청과 설득을 받아들여 빈방 하나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누나의 생일에 가족이 모였다. 모두 5명이었다. 우리는 병원에서 마련해 준 빈방의 테이블에 케이크를 올리고 초 5개를 꽂았다. 그리고 다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올렸다.

딸의 병을, 아내의 병을, 엄마의 병을, 누나의 병을 낫게 해 달라는 기도는 아니었다. 시인 남진우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라는 시를 썼다.

죽은 자들로 가득 찬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가 보면 멀리 밤하늘에 떠 있는
차가운 달의 심장

그는 죽음을 차갑게 묘사한 듯싶다. 우리의 기도는 ‘죽어 가는 자’를 위한 것이었으며, 매우 뜨겁고 아름다웠다. 1시간 후 생일 파티는 끝났다. 누나는 정말 뜻깊고, 잊을 수 없는 멋진 생일 파티라고, 무척 고마워했다. 가슴 속에서는 다들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렸겠지만, 눈물을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생일 파티가 이승에서 연 누나의 마지막 조촐한 잔치였다.

몇 개월이 지나 누나는 세상과 작별했다. 병원에서 생일 파티를 여는 일은 매우 드물다. 더구나 암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생일 파티는 당사자, 가족, 제삼자의 가슴도 아프게 한다. ‘내가 곧 죽는구나!’ 하고 체념한 사람에게 생일 파티를 하자고 하면 대뜸 손사래를 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태어난 날은 가장 가치가 있는 날이다. 그러나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 병원에서 생일 파티를 열기는 무척 어렵다.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방해 요소가 많다.

미래의 병원에서는 이 방해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층마다 5평 내외의 방 하나씩을 비워 놓자. 글자 그대로 ‘빈방’이다. 그러면 반대가 심할 것이다. 아무리 병원을 크게 지어도 사용하다 보면 공간이 부족해진다. 비품은 늘 넘쳐나고, 사람들이 일할 공간은 비좁다. 복도에 작은 책상을 놓고 서류를 작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가 조금만 더 넓으면 좋겠는데”라고 하며 아쉬워한다. 그 상황에서 5평이나 되는 공간을 텅 비워 놓자고 하면 대부분 반대할 것이다.

1000개의 병상을 갖춘 병원에 980명이 현재 입원해 있다면, 오늘 생일을 맞은 사람은 적어도 4~6명이다. 3개월 이내에 세상과 작별할 사람도 최소 20명이 넘는다. 그들을 위해 살아 있음을 감사해하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죽어 가는 자들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 빈방은 종교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병원에 있는 커피숍을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과 단체에는 그들만의 보호된 공간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심신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믿는 신에게 평안을 갈구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수술이 끝난 환자는 자기 병을, 그리고 향후 치료 과정을 의사와 최소 몇 분만이라도 상담하기를 원한다. 보호자도 마찬가지다. 이는 퇴원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면 공통으로 나타나는 바람이다.

그러나 현재 여건으로는 쉽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사람들이 오가고, 전화벨이 울리고, 누군가를 호출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는 개방된 공간에서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의사와 환자, 보호자가 만나 조용한 방에서 10~20분이라도 깊은 대화를 나누면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된다. 또 이 빈방은 방음 시설을 잘 갖추어 고함치는 방으로 쓸 수도 있다. 큰 수술을 마친 환자 혹은 가슴속에 스트레스가 쌓여 마음껏 고함치고 싶어 하는 환자를 위한 곳이다.

혼자 빈방에 들어가 실컷 고함을 지르거나, 울면서 기도하거나, 친구에게 절절하게 하소연할 수도 있다. 어두운 밤에 홀로 방에 앉아 큰 소리로 기도를 올려 본 사람, 치미는 화를 억제하지 못해 마구 소리를 질러 본 사람은 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또 일가친척들과 차후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할 수도 있다. 환자에게 이러한 공간을 준다면 병의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존 병원들이 건물을 개조해 빈방을 만들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설계되는 대형 병원들은 반드시 방음 장치가 잘 된 빈방을 만들어 환자들이 마치 노래방과 같이 공유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사소한 것 같 지만, 그 병원이 환자를 최우선으로 대한다는 의미가 담긴 뜻깊은 상징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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