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심실 견뎌낸 아기… ‘의사의 길’ 걷는다

[서동만의 리얼하트 #17] 복합 대혈관 전위증, 심실 하나 반.

    기적적으로 자란 아이가 의대 졸업을 앞두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진료를 마치려는 데 아이가 말했다.
저 올해는 수능 괜찮게 본 거 같아요.
선생님과 같은 학교는 아니더라도 ‘인 서울’ 의대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드름이 한창인 아이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공부하는데 몸이 힘들지는 않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은 끝에,

조금 덜 힘든 분야로 정하면 어떨까?

그냥 의대로 지원할래요.
(신통 방통!!)

아기는 ‘대동맥궁 단절(B형),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 심실중격 결손(Taussig-Bing Anomaly), 동맥관 개존’ 이라는 매우 어려운 조합의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다[사진1].

[사진 1] (가)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증과 동반된 심실중격 결손(Taussig-Bing Anomaly) 모식도.
(나) 대동맥궁 단절(화살표) 모식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동맥관이 막히기 전에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태어난 지 9일 만에 개심 수술을 받았다.

대동맥 궁을 재건해주고, 동맥 치환술을 시행하고, 심실중격 결손을 봉합하고, 우심실 유출로를 확장해 주었다(완전 교정술). 필자가 이러한 수술법을 국내 최초로 1996년 국내 학회지에 보고한 후였다[사진2].

[사진 2] (가, 나, 다) 대동맥궁 재건술과 동맥 치환술 모식도.
인공 심폐기 가동 238분, 대동맥 차단 122분, 완전 순환 정지 65분.
길고 복잡하고 위험한 수술이었다. 다행히 아기는 무사히 회복되었다.
아홉 살이 되어 다시 개심 수술을 받았다.
우심실 유출로가 정상에 비해 좁았기 때문이다[사진3-가].

[사진3] (가) 좁은 우심실 유출로(화살표).
(나) 충분한 좌심실 유출로(점선).
상대 정맥을 직접 오른쪽 폐동맥에 연결해줌으로써 우심실이 하대 정맥을 통해 들어오는 혈류만 감당하면 되도록 우심실의 일을 반감해준 것이다[사진4].

 

[사진 4] (가) 상대 정맥과 오른쪽 폐동맥의 연결 부위(파랑 화살표).
(나) 정상적인 모습의 대동맥궁(빨강 화살표).
우리는 이런 상태의 심장을 ‘하나 반(1.5) 심실’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도 우심실이 혈류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면 우심실은 포기하고 좌심실 하나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단심증’이 되는 것이다.

@ 이런 수술에는 큰 문제 하나가 있다.

대동맥궁 단절을 해결하는 데에는 ‘완전 순환 정지’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전신의 체온을 낮게(25℃ 전후) 유지하면서 체내 혈액 흐름을 일정 시간 동안 완전히 멈추는 것이다. (마치 겨울 잠을 자는 곰의 세계처럼). 즉, 뇌 혈류의 공급도 중단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주어진 시간 동안, 뇌로 가는 혈관을 절개하여 대동맥궁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아기의 경우 65분이 소요됐다. 뇌 손상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2000년이 지나면서는 뇌 혈관에 지속적으로 혈류를 유지하는 기법이 개발되어 이러한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이러한 어려움을 겪어내고 이렇게 잘 자라 준 것이다.

@ ‘하나 반(1.5) 심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심장이 온전한 양(좌/우)심실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고 최선이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심실이 하나인 채(단심실)로 태어나기도 한다. 그 중간의 어디쯤 해당한다는 의미에서 ‘하나 반 심실’이라 부르고 있다. 단심실 환아들은 많은 합병증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하나반 심실은 최선을 다해 단심실의 상태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이 환아가 머리에 손상을 입지 않고, 단심실이 아닌 상태로, 쉽지 않은 학업을(이제 의과 대학 졸업반) 즐겁게 할 수 있는 인재로 자라 준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The sun will not harm you by day, nor the moon by night. Psalms 121:6
낮의 해가 너희를, 밤의 달도 너희를 해치지 아니하리라. 시편 121:6

(내심 이 친구가 자신을 위해서,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 심장병을 전공으로 삼기를 기대해본다.)

 

    서동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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