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의사의 헌신.. "필수 의료 의사 수 늘려야"
[김용의 헬스앤]
오늘(20일) 발인을 한 고 주석중 교수(59·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의 애도 물결이 계속되고 있다. 고인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도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다. 이번 추모 열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비통에 잠기고 안타까워 할까? 환자들을 아끼던 그의 따뜻한 성품 외에 자신의 시간을 쪼개 사람을 살리던 진정한 의사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필수 의료’의 최전선에 있는 분야가 심장혈관 흉부외과 의사다. ‘헌신’(獻身)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다. 고 주석중 교수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고인은 응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병원에서 가까운 곳에 살며 휴일에도 긴급 대기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취하지 않기 위해 아예 술을 마시지 않았고 병원에서 먼 거리에 있는 골프장과는 담을 쌓았다. 새벽 1시 다 돼서 퇴근하고도 새벽 3시에 응급 환자가 생기면 병원으로 달려가곤 했다. 고인은 “비록 개인 시간이 거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지금의 삶이 늘 고맙다. 불확실한 미래에 정답을 찾는 후배들에게 바란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는 말을 남겼다.
고인의 전공은 업무 자체가 매우 어렵고 수술이 잦아 의사 수가 부족한 대표적인 분야다. 과거에는 외과, 산부인과 등 수술로 사람을 살리는 분야에 의대 1등이 지원했지만, 요즘은 ‘피를 덜 보고’, 개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전공이 인기다. 이런 추세에 젊은 의사 탓만 할 수 없다. 공부 잘 하는 내 아들, 딸이 힘들고 의료 분쟁이 잦은 전공에 지원한다면 말리는 부모가 적지 않을 것이다.
흉부외과 뿐만 아니라 같은 필수 의료인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도 매년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때 미달이 속출하고 있다.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는 저출산 여파도 있지만 의료 소송, 힘든 근무 여건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명감 하나로 중소 도시에 산부인과 병원을 차렸던 의사가 의료 사고 한 번으로 무너진 경우가 있었다. 본인은 병원에서 숙식을 하더라도 수술을 돕는 간호사는 충분한 인원을 둬야 한다. 현재의 낮은 의료수가로는 수술을 하는 동네 병원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개원이 어렵고 일 자체가 힘들다 보니 젊은 의사들이 피하는 것이다.
후배들의 충원이 충분히 안 되면서 흉부외과는 내년부터 의사 수가 자연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은퇴하는 전문의가 신규 배출 전문의보다 많아 그 공백이 커진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흉부외과 의사 수는 1600명 가량이지만 내년부터는 신규 전문의(21명)보다 은퇴하는 전문의(32명)가 더 많아진다(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고령화, 미세 먼지, 식습관 등의 변화로 폐암·심장병은 크게 늘고 있는데 수술 담당 의사는 갈수록 줄고 있다. 남아 있는 흉부외과 의사의 업무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흉부외과 젊은 의사들은 중도에서 그만두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5년 간(2018~2022년 7월) 흉부외과 전공의 중도 이탈률은 14.1%로 필수 의료 진료과목 중 가장 높다. 사명감을 갖고 뛰어 들었지만 막상 마주하는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는 방증이다. 매일 얼굴에 피를 묻히며 수술하는 ‘낭만 닥터’는 드라마일 뿐 평생 직업으로 선택하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지역에선 심장 수술이 급해도 흉부외과 의사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큰 병원에서도 심장 수술은 손사래를 치는 경우도 있다. 흉부외과는 많은 의료진이 필요한 장시간의 고난도 수술이 대부분이다. 심장 수술은 간호사 포함 10명 이상의 인력이 들어가면서 인건비 부담이 크다. 5시간과 10시간의 수술비가 같다 보니 시간이 길어지면 병원 경영 상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엄청난 압박감을 견디며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의료진에게 돌아가는 보상도 적다. 힘들게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가 동료 의료진에게 미안해 할 정도다.
흉부외과를 비롯한 필수 의료의 문제가 부각된지는 오래 됐다. 심장 수술 의사를 외국에서 수입하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지만 이제는 정말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 의사들도 대우나 환경을 알고 나면 한국 오길 꺼려할 것이다. 얼마 전 소아청소년과 학술 대회에서 전공 과목 대신 보톡스 시술 강의가 있었다. 아이 엄마의 핀잔 대신 마음 편하게 일하겠다며 소아청소년과 폐과를 준비하는 의사들이다.
고 주석중 교수의 애도 물결은 우리 사회가 힘들게 일하는 의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해도가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다. 지금까지 수백, 수천 명을 살렸고 앞으로도 수천 명을 더 살려야 할 분이 이렇게 떠나셨다는 게 속상하다고 비통해 했다. 국가적으로 막대한 손실이다.
고 주석중 교수가 떠나면서 또 다시 해묵은 과제가 떠오르고 있다. 필수 의료 의료 수가 인상, 근무 환경 개선, 인력 유인을 위한 보상 확대... 이제 일반인들도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보건 당국, 대형 종합병원 오너, 의사 단체는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젊은 의사가 보톡스 시술로 나가는 것을 마냥 내버려 들 것인가. 고 주석중 교수의 추모 열기는 이번에는 필수 의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보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