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 전공의 인력난... "근본적 해결엔 수련제도 재정비"
대형병원 쏠림현상 가속화 우려도
전공의 단체가 수련의 질을 높이고 환자의 안전과 전공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연속 근무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15~16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열린 ‘2023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앞선 세션 발표들에서 “전공의들이 특정 진료과와 특정 병원으로 쏠려 지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근본적 해결책으로 수련 제도의 재정비를 제시한 것이다.
▶소아과 등 4개과, 전공의 인력난 문제 심각해
15일 대한의학회는 <전공의 지원 현황과 대책>을 주제로 토의 세션을 구성했다. 이 자리에는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대한내과학회 임원진들이 발표 연자와 패널로 나섰다.
발표에 따르면, 이들 4개 과가 마주한 전공의 인력난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위협이다. 소아청소년과는 전공의 TO가 있는 83개의 수련병원 중 약 19.2%에 해당하는 16개 병원에 전공의가 한명도 없다. 그나마 신규 지원자도 90%가 수도권에 집중돼 극심한 쏠림현상을 겪고 있다.
산부인과는 특히 남성 전공의의 지원이 부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23년 산부인과에 지원한 남성 전공의는 전국을 합쳐 7명이다. 대체로 남성 전문의가 당직을 서며 응급 분만을 처리하는 국내 산부인과 근무 환경을 감안했을 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분만 인프라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흉부외과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지적된지 30년이 넘었지만 희소 의료 분야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 결과 2024년 은퇴 예정 전문의가 신규 전문의 취득자를 넘어서게 됐다. 점점 전문의 수가 감소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학회 내부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내과는 전공의 수련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면서 일시적으로 지원율 문제를 해결한 상황이지만, 내부적으로는 3년제 전환이 오히려 '패착'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근무 과정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고년차 전공의가 사라지면서 수련의 질은 떨어지고, 3년차에 곧바로 시험을 준비하면서 실제 현장 인력도 오히려 모자란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단순 계산으론 100%를 넘는 지원율을 보였지만, 수도권 쏠림 현상을 대입하면 지방의 의료 공백은 다른 과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문제도 있었다.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방안이 지속적으로 논의 중인 상황은 향후 의료현장 일선의 인력난 문제를 부채질할 수도 있단 의견도 나왔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수련위원장 신정호 교수(고대구로병원)는 "전공의를 이미 충분히 보유한 일부 대형병원들만이 근무 시간 단축에 대처가 가능할 수도 있다"며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대형병원으로 쏠리는 현상이 더 극심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근무시간 단축, 권리 보장의 문제... 전공의는 아직 교육받는 단계"
전공의들도 이러한 우려에 일부 동의했지만, 근무시간 단축 등은 아직 교육받는 단계로서 보장받을 권리란 반론도 이어졌다. 다음 날인 16일 <전공의 수련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구성된 세션에서 발표 연자로 나선 대한전공의협의회 신유경 전공의실태조사위원장(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은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이 쏠림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견에 부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공의는 의료 서비스 제공자에 앞서 피교육자"라며 인력 부족의 문제를 전공의에게 전가해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근무시간 단축이 현재 보건 의료 체계가 감당하기에 과도한 요구로 들릴 순 있지만, 이는 이미 몇 해 전에 정책적으로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근무 시간 단축은 전공의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서도 “근무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수련의 질과 환자의 안전을 저하하지 않기 위해선 다양한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 요인은 전공의의 근무시간 외에도 업무의 내용과 강도, 지도 및 감독 체계, 수련 기간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은 근무시간이 단축하며 발생하는 의료 공백 문제에 대해 더욱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근무 시간이 단축되면 수련 환경이 열악하거나 인력이 부족한 병원일수록 대체 인력 확보가 어려워져 쏠림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면서도 “이미 전국의 수련병원 간 환경의 격차가 큰 상황에서 근무 시간 단축만이 원인이라는 문제 제기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공의들의 주장에 대해 과거 전공의협의회 정책이사를 맡았던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새롬 연구 교수는 “더 양질의 수련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인력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근무 시간 단축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전공의 수련의 목표를 더 명확히 설정하고 공적 가치와 연결해서 정치권과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료계는 수련제도 개편의 필요성엔 공감했지만, 근무시간 단축 등으로 뒤따를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날 세션의 좌장을 맡은 대한의학회 박정율 부회장은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충분히 협의를 거쳐 수련환경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