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함께한 날들…5주 심장 훈련 견딘 6개월 아기

[서동만의 리얼하트#15] 수정 대혈관 전위증

기도와 함께한 날들…5주 심장 훈련 견딘 6개월 아기
새로 태어난 아기의 심장에 이상이 있을 경우 부모들의 마음 졸임은 감히 짐작하기도 힘들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 ㅊㅇ 잘 있나요?”
아이가 병원에 오는 날엔 어김없이 스님의 전화 연락이 환자보다 먼저 온다.
아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복잡한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수정 대혈관 전위증[사진1] 이라는.

 

 

(가) 정상 심장. (나) 수정 대혈관 전위증. [사진1]
아이 부모는 불심이 깊었고, 스님은 마침 저자의 병원에 법당을 열어 환자들을 위해 위로와 발원을 이어주고 계셨다. 젊은 부부의 이러한 딱한 소식을 접한 스님은 나에게 직접 찾아오셨다. 그렇게 스님과는 친해졌다.

아이는 생후 6개월에 처음 병원을 찾아왔다. 시간이 조금 늦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심장 내부에 구멍이 났거나, 어디가 좁아졌거나, 판막의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하는 등의, 심장병 아이들이 가지는 가장 흔한 문제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좌/우 심실의 모양과 기능이 불일치하다는 것이 문제다(전편 참조 요망).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 늦게 오게 된 것이다.

이 병은 좌심실과 우심실의 기능이 바뀌었을 뿐 체순환과 폐순환이라는 혈류의 흐름이라는 관점에서는 정상적이다. 환아가 커가면서 여러 증상이 생길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좌심실 역할을 맡은 형태학적 우심실의 기능이 나빠지게 되어, 전체적인 심장기능 부전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수술로 좌/우 심실의 모양과 기능이 일치하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심방 치환술과 동맥 치환술을 동시에).

출생 후 한달 이내에 왔다면 곧바로 본 수술을 할 수 있었겠으나 이대로 수술을 하면 형태학적 좌심실이 제 기능을 감당할 수 없다[사진2-가].

우선 형태학적 좌심실 근육을 늘려 주어야 한다. 보디 빌더가 근육을 만들어 가듯이.
5주 동안의 근육 만들기에 들어갔다. 세 차례에 걸쳐 ‘폐동맥 밴딩’이라는 준비 수술을 한 것이다[사진2-나]. 준비 수술이라지만 아이 부모에게는 매번 너무도 큰 수술로 느껴졌을 것이다.
드디어 생후 8개월 열흘 만에 본 수술이 진행되었다.

(가) 폐동맥 밴딩 수술 전, 심실 중격이 왼쪽으로 밀림(화살표).
(나) 폐동맥 밴딩 수술 후, 심실 중격이 오른쪽으로 밀림(화살표).[사진2]
큰 수술이었다. 심방 치환술이나 동맥 치환술 하나 하나가 큰 수술인데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한다. 인공 심폐기 가동 시간만 400분이나 걸렸다(남자 테니스 결승 경기 5 세트에 걸리는 시간보다 길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잘 견뎌주었고 열흘 만에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사진3].

수술 후 심장CT: 폐동맥(화살표), 대동맥(별표). [사진3]
수술 후 8개월이 지나 한차례 더 수술이 필요했다.
또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 병의 자연 경과 중에 흔히 발생하는 부정맥에 대한 인공 심박동기를 삽입해야 했다[사진4].

그러나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이의 좌심실은 홈런 볼을, 우심실은 유연하게 연식 정구 공을 쳐내 듯이 멋지고 조화롭게 열심히 뛰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스님께서 전화하셨다.
“우리 ㅊㅇ 캐나다로 어학 연수가면 안됩니까?”

[인공 심박동기(화살표), 정상 심장 크기. [사진4]
@ 수정 대혈관 전위증 이란?

전편에서 언급했 듯이 좌/우 심실은 기능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다르다.
우심실은 폐로 혈류를 보내며(폐순환) 평상 시 폐동맥의 압력(30/15 mmHg) 정도를 감당하면 된다.
그러나 좌심실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높은 저항의 대동맥 압력(120/80 mmHg)을 거슬러 전신으로 혈류를 보내야 하므로(체순환) 큰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좌심실은 마치 야구에서 홈런 볼을 치듯이, 우심실은 연식 정구에서 볼을 치듯이 합목적적으로 만들어졌다.
즉, 좌심실의 구조는 단순히 펑퍼짐한 것이 아니라, 나선형(spiral)으로 배열된 근육 덩어리가 용수철처럼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다(혹은 뱀이 똬리를 틀었다가 튀어 오르듯이)[사진 5]. 반면에 우심실은 근육의 양도 적고, 근섬유의 배열도 무질서하며, 잘 늘어날 수 있도록 되어있다[사진6].
그런데 수정 대혈관 전위증 환자의 경우 심장의 발생 과정에서 두 심실의 위치가 바뀌면서 그 역할도 뒤바뀐 것이다.

[사진 5]

[사진6]
숨을 쉬지 않는 태아 시기나 출생 직후에는 두 심실이 감당해야 하는 저항(압력)이 거의 같다. 따라서 형태학적 우심실의 근육량도 상당하다. 그러나 출생 후 아기가 자발적으로 호흡을 하게 되면서부터 우심실이 감당해야 되는 일이 현저히 적어지기 때문에, 근육량에서 점차 좌/우 심실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커지기 전에, 수술로 두 심실의 역할이 제대로 되도록 고쳐주는 것이 이상적이다. 만약 이 환아의 경우처럼 그 시기를 놓치면 준비 훈련을 거쳐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설명조차도 쉽지 않다.

게다가 모든 환자에서 이러한 훈련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지도 않는다. 근육 만들기에 성공하지 못하면 앞선 연재 14회의 증례처럼 시간 경과에 따라 여러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더욱이 본 수술은 긴 시간이 필요하며 그 성공 여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러한 설명들을 들으면서 매번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 아이 부모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기도가 필요한 것이리라.

    서동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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