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연 뒤 20년 지나서야…드러난 심실 구조의 '신비'

[서동만의 리얼하트 #14] TGA, 시절 인연(2)

선천적 심장의 문제를 이겨내고도 출산을 해낸 환자들도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녀는 서른 중반에 고대하던 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아 품에 안았다.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린 보람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녀는 매우 어려운 선천성 복잡 심기형(심실중격 결손을 동반한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증, 일명 Taussig-Bing anomaly)을 가지고 태어났다[사진1].

Taussig-Bing anomaly: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증, 심실중격 결손증. [사진 1]
서울 올림픽의 열기가 뜨거웠던 1988년, 생 후 백일 무렵에, S 대학병원에서 개심 수술(심실중격 결손 봉합과 세닝 술식)을 받았다[사진2].

(가) 세닝(Senning) 술식. (나) 세닝 수술 후 CT 소견. [사진2]
 오랜 병원 생활을 치루었고, 다행히 큰 탈없이 자라 사춘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마다 의료진과 부모님은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철이 들어 알게 된 사실은 좌심실과 우심실의 역할이 뒤바뀌었고, 심장 기능이 오래 버티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스물 넷에 심장 판막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개심 수술을 받았다. 삼첨판막을 인공 조직 판막으로 바꾸는 수술이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겉으로는, 키 165 cm, BMI 21 kg/m2로 스스로도 만족스러울 만큼 건강해 보였고 아름다웠다. 결혼과 함께 아이를 갖기 원했으나, 예비 산모의 건강을 위한다면, 임신과 출산이라는 큰 도전은 피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머리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가졌고, 너무나 감사한 결과를 선물 받은 것이다.

출산 후 2년이 지나 다시 개심 수술을 받았다. 12년 동안 사용했던 인공 조직 판막의 수명이 다해 새로운 인공 판막이 필요하다고 했다. 심실 기능이 저하된 상태였고 폐동맥 고혈압도 시작되었다고 했다[사진3].

(가) 수술 전, 심비대와 심한 폐부종. (나) 수술 후, 회복된 심장과 폐. [사진 3]
두 번째 아기에 대한 도전은 정말 무리라고 했다. 따라서 수명이 긴 기계식 인공판막을 사용하기로 했다. 재수술 후 이제 심장 기능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 무엇이 문제였나?

1988 년 무렵에 이처럼 어려운 선천성 심장병에 대하여 이렇게 복잡한 수술 방법으로 백일 된 아기를 살린다는 것은 기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심실중격 결손 봉합과 동맥 치환술이 답이다[사진4]. 수술 자체의 어려운 고비만 잘 넘기면 이 환자의 경우에서 보이는 삼첨판막 문제와 뒤바뀐 심실의 기능 저하를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기억할 것은 우리나라에서 동맥 치환술의 첫 성공은 1986년이라는 사실이다.

(가) 심방 치환술(Senning operation): ‘우심방→우심실→대동맥’ 흐름을 ‘좌심방→우심실→대동맥, 우심방→좌심실→폐동맥’으로 바꿔줌. (나) 동맥 치환술(Jatene operation): ‘우심방→우심실→대동맥’ 흐름을 ‘우심방→우심실→폐동맥, 좌심방→좌심실→대동맥’으로 바꿔줌. [사진 4]
게다가 이 환자의 진단과 같은 구조적 문제는 개념 파악이 잘 안되어 있던 시절이다. 한편 1975년 세계적으로 첫 동맥 치환술(Arterial switch operation)이 성공한 시점에, 이미 심방 치환술(Atrial switch operation)은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었고, 서구의 많은 병원에서는 수술 사망률 5% 미만의 안정적인 성적을 보였다(Trend). 그런데 사망률이 높은 새로운 수술 기법인 동맥 치환술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Evidence). 심방 치환술 후 시간이 지날수록 좌심실의 기능을 떠 안게 된 우심실의 기능이 현저히 나빠진다는 것이다. 즉, 좌심실과 우심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이 눈 앞에 보여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좌심실과 우심실, 무엇이 다른가?

기능적으로 다르다.

우심실은 폐로 혈류를 보낸다. 우심실에서 폐로 가는 길은 거리가 가까울 뿐 아니라, 저항도 낮다. 기본적으로 폐는 공기 주머니 이기 때문이다(평상시 폐동맥 압력: 30/15 mmHg).

좌심실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물구나무서기를 한 상태에서도, 물 속에서도, 하늘 높이 올라가 있어도, 혈류를 확실히 보내야 한다. 먼 거리를 가야 하며 말초 혈관으로 갈수록 길은 점점 좁아지고 구불구불해진다. 즉 좌심실이 감당해야할 저항이 높아진다(평상시 대동맥 압력: 120/80 mmHg).

따라서 양심실은 구조적으로 다르게 만들어졌다[사진5].

[사진5]
좌심실은 야구에서 홈런 볼을 치듯이, 우심실은 연식 정구에서 볼을 치듯이, 합목적적으로 만들어졌다.
145그램의 야구공을 초속 45미터 스피드로 쳐서 홈런으로 만드는데 약 184 줄(Joules)이 필요하다고 한다(연식 정구 공은 30그램). 한편 좌심실이 50 cc 정도의 혈액을 120 mmHg 압력으로 한번 내보내기 위해서는 약 800 줄(Joules)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림 셈으로 보아도 좌심실에 부과되는 일은 엄청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평생 무려 30~40억 번의 펌프 작용을 해야 한다. 따라서 좌심실의 구조는 단순히 펑퍼짐한 것이 아니라, 나선형(spiral)으로 배열된 근육 덩어리가 용수철처럼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다(혹은 뱀이 똬리를 틀었다가 튀어 오르듯이)[사진6]. 반면에 우심실은 근육의 양도 적고, 근섬유의 배열도 무질서하며, 잘 늘어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사진6]
심실의 구조적인 차이가 엄청난 기능적인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대혈관 전위라는 병의 수술 결과를 통해서 짧은 기간 동안 집약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1953 년 인공 심폐기를 이용한 개심수술이 시작된 이후 20여년만에(1975 년 즈음), 인류 역사 상 처음으로 밝혀진 숨겨진 사실이다.

그 동안 우리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서동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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