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응급실 뺑뺑이’…일본과 비교해보니
응급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수용 가능한 응급실을 찾다 사망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30일 교통 사고로 복강 내 출혈이 발생한 70대 남성이 11곳의 병원으로부터 수용 불가 통보를 받고 이송 중 사망했다.
두 달 전 대구에서 사망한 10대 환자와 비슷한 사례다. 이 환자는 4층 건물에서 떨어져 머리와 발목을 크게 다쳐 구급차로 이송됐으나 7개 병원에게서 치료 가능한 의사와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수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2시간 동안 병원을 찾다 결국 숨졌다.
앞서 지난해 7월에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도중 두통을 호소하다 의식을 잃었지만 병원 내 수술 가능 인력의 부재로 타 병원 이송과정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모두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제도적 허점과 공백을 잘 보여주는 사고다.
◆정부의 응급의료 기본계획, 효과 있을까?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현장 이송 단계부터 응급실 진료, 수술 등 최종 치료까지 지역완결적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응급의료기관 체계를 각각 중증, 중등증, 경증 진료 기관으로 명확히 나누고 순환 당직 제도로 응급의료 공백을 막겠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그러나 의료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책이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한다. 대한뇌졸중학회는 4월 19일 ‘응급의료 기본계획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 현황과 발전방안 모색’ 간담회에서 “정부가 25년째 똑같은 계획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응급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119 구급대를 전문진료과와 연계하고 응급실에서 경증환자와 중증환자를 분리해 치료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3월 대구 사고 때 환자가 응급실을 찾는 동안 일부 병원 응급실에서는 경증 환자를 치료한 정황이 발견됐다. 정부의 환자 중증도 분류가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 받는 이유다.
◆먼저 홍역 치른 일본 사례 살펴보니...
일본에서는 2008년 10월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임산부가 의식을 잃어 구급차에 실렸지만 8개 대학병원에서 수용이 어렵다는 통보를 했다. 해당 환자는 한 사립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지주막하출혈로 사망했다. 일본 응급의학계는 이 사고를 계기로 학계 의견을 모으고 성명문을 발표해 정부에 정책 변화를 제안했다.
병원 이송 전단계에서 국민이 어떻게 대처할지 교육하고, 응급의료인력을 충원하며, 의료기관의 수용결정을 신속화하자는 것이 성명문의 핵심 내용이었다. 특히 응급환자와 비응급환자가 각기 다른 회선을 통해 신고를 하도록 해, 신고 시점부터 이원화된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증상에 따라 환자가 방문하는 의료시설을 구분한 것도 특징이다. 일본은 구급의료기관을 1차, 2차, 3차로 명확히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1차 구급의료기관은 당번 의사제를 통해 외래 중심의 경증환자를 담당하고, 2차는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담당한다. 3차 구급의료기관은 중증 응급환자에게 고도의 응급의료를 제공하는 것을 전담하는데, 중증환자만을 위해 병실을 엄격하게 비워놓는다. 경증 환자를 진료하는 구역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
일본은 지방 자치단체의 경제적 지원과 응급실 이용에 대한 보험수가를 높여 3차 기관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한다. 또, 지자체, 지역소방, 지역병원이 긴밀하게 연계돼 지역 내의 의료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협의하고 있다.
◆”병상, 인력 확충만이 답은 아니다”
여당과 보건복지부는 31일 오후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를 열고 응급실 사고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료기관 응급환자에 대한 수용과 거부의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전체 의료기관의 병상과 인력 확충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가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전문가 지적이 있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1명의 응급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서는 전문의, 수술방, 마취과 협조, 인공호흡기, 중환자실이 모두 필요하다”며 “일련의 사고가 병상과 인력만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무작정 자원을 투자해 인프라를 넓히기보다 병원 간 긴밀한 연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병상이 부족해 환자를 받지 못했다"는 병원들의 설명에 정작 중요한 병원 간 전원 문제가 가려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과 거부 기준을 엄격하게 마련하는 것은 자칫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며 일본 등의 사례처럼 병원 이송 전 단계와 신고 체계를 이원화하고 병원들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등 다각도의 심도 있는 정책을 고민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