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에 크게 다치면 수술 받아야 할까?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의료경제학과 환자의 선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80세 할머니가 낙상해 허리를 다쳤다. 의자에 앉아서만 생활할 수 있었다. 커다란 1인용 소파에 앉아 밥을 먹고, 대소변을 처리했으며, 잠을 잘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이불 위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정밀 진단한 결과 수술을 받으면 그나마 조금 활동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고령인 까닭에 매우 위험한 수술이 될 수도 있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으며,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금 더 나아질’ 뿐이었다. 가족들은 회의를 열었다.

‘당장 수술을 하자’라는 파와 ‘그냥 이렇게 두는 것이 더 좋다’라는 파로 나뉘었다.

찬성파는 앞으로 최소 10~15년을 더 살 텐데 어떻게 그 시간을 앉아서만 보낼 수 있느냐, 누가 15년 동안 옆에 붙어서 보살필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반대파는 큰 비용을 들인 데 비해 효과가 없으며, 고령이므로 자칫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그냥 이렇게 사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의학 치료 역시 경제학 이론이 작용한다. 이른바 의료경제학이다. 보건·의료 영역의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분석·연구하는 학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돈을 들여 위험한 치료를 할 것인가? 치료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 살다가 자연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의료경제학은 투입되는 돈으로 얼마나 많은 효율을 얻을 수 있는지 따진다. 의학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 수준이 향상한 오늘날에도 이 문제를 놓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수술비 대비 향후 소득’을 고려하면 대부분 답은 금방 나온다. 위험이 따르더라도 고가의 수술을 받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면 수술비 이상으로 경제적이므로 이익인 경우가 많다.

반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수술을 해 돈을 쓰고, 훗날 부작용을 일으켜 역효과를 내는 수술도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수술이 횡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고, 자기에게 이익이 됨에도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체내 심장 박동기가 그 중 하나이다. 불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병자처럼 보일 수 있어서가 주된 이유라니, 의사로서는 참 답답할 노릇이다.

1984년 수련의 1년 차 인턴으로 안암병원에서 일할 때 20세 심장 환자가 입원했다. 그의 심장 기능은 정상인의 10% 미만으로 거의 기능을 못 하는 상태였다. 확장성 심근증이었다. 그때만 해도 심장에 이상이 있으면 ‘삶을 정리해야 하는 것’으로 다들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젊은 환자가 너무 안타까워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환자 입원 차트 요약의 맨 마지막 ‘향후 치료 계획’에 ‘심장 이식 수술을 하면 어떨까?’라고 적어 놓았다. 다음날 교수님이 나를 호출했다.

“도대체 심장 이식 수술이 무엇인가? 그것이 가능한가?”

“…….”

교수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셨다.

심장 이식 수술은 196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 시술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심장병 환자에게서 수술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시술 성공률이 높아졌지만 의료수준이 떨어졌던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하기만 했다. 그런데 내가 ‘향후 치료 계획’에 떡하니 ‘심장 이식 수술’이라고 적어 놓았으니 교수님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곧 심장 이식 수술이 가능하리라 믿었고, 8년 후인 1992년 국내 첫 심장 이식 수술이 행해졌다. 그날 이후 대형 병원에서 심장 이식은 그리 어렵지 않은 수술이 됐다. 나는 ‘~은 안 된다’라는 단정적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달았다.

문제는 심장을 이식받으려는 사람에 비해 심장을 기증하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심장 이식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심장 이식 대기자로 등록해야 한다. 흉부외과, 심장내과 또는 소아청소년과 심장분과에서 심장 이식이 필요하다고 판정하면 각종 혈액 검사, 영상 검사 등을 통해 이식 적합성을 평가한다. 이후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대기자로 올라간다. 정기적 진료를 받으면서 자기에게 맞는 심장 공여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때까지 인공 심장으로 연명하기도 하고, 시기가 넘어가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심장 이식 후 생존율은 1년이 80%, 5년이 65%, 10년이 45% 정도이다. 통상 5년을 넘어서면 약 10년 동안은 더 살 수 있다고 본다. 의학 기술이 발달해 요즘에는 심장·폐 동시 이식 수술을 하기도 한다. 수술 비용은 3000만~4000만원 수준이다. 이때에도 비용 대비 효율성 문제가 나타난다. 이식 수술 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면 6개월 이내에 사망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기껏 5년(운이 나쁘면 6개월) 더 살기 위해 4000만 원을 내지 않겠다’라고 거부하는 셈이다. 의사들이 설득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서 3~4년을 살다가 의미 없이 하직하기보다는 단 1년이라도 건강하게 살다가 인생을 정리하는 편이 훨씬 더 의미 있다. 심장 공여자가 나타날 때까지 대기하는 동안 몸에 주입하는 인공 심장도 성능이 매우 뛰어나다. 인공 심장에는 모터가 필수이기에 공학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은 공학과 융합돼야 발전할 수 있다. 기술이 더 발달하면 인공 심장은 진짜 심장과 똑같이 만들어질 것이며, 그 외의 인체 장기들도 차례차례 만들어질 것이다. 미래의 병원에서 인공 장기 교체 시술은 능숙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나아가 비용 대비 효율성도 높아져 ‘비싼 돈을 주고 수술을 받아야 하나?’ 하는 망설임도 사라질 것이다.

허리를 다친 80세 할머니는 어떻게 됐을까? 할머니는 수술을 거부했고, 오로지 소파에 앉아 온종일 TV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식사도 잘 드시고, 잠도 잘 주무셨다. 그러다 85세를 넘겼을 때 할머니는 자식들을 불러 모아 뜻밖의 말을 했다.

“이제라도 수술을 받아야겠다.”

그러나 병원에서 거절했다.

“연세가 너무 많아서 위험합니다.”

90세 중반에 작고할 때까지 할머니는 약 15년을 그렇게 소파에서 보냈다. 자식들에게 폐를 끼친 것이 매우 미안하기도 했지만, 여생을 무의미하게 보낸 것에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후회가 막심했다.

“그때 수술을 받았어야 했는데!”

의학 기술이 지금보다 덜 발전한 옛날 일이지만, 의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돌발상황으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비용 대비 효율성을 따져 보아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환자의 ‘삶의 질’을 확실히 높일 방법이 있다면, 생사만 따져 치료를 포기했다가는 후회할 수도 있다.

미래의 병원은 치료법이 발전하고, 인공지능(AI)의 도움으로 여러 변수들을 고려해 환자와 보호자의 고민과 망설임을 덜어주는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의사와 환자 보호자가 함께 최선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때 마지막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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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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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yo*** 2023-10-12 15:14:05

      아.. 할머님은 고통스러우셨을테지만 가족을 위해 참고 넘기신 듯 합니다. 삶의 질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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