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에게 “뇌 기증하시겠습니까?” 물을 수 있나?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시신 기증 문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의사가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면 많은 경우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비록 가족이 사망했지만, 의사와 병원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의사는 머뭇거리다가 덧붙인다. “뇌를 기증하시겠습니까?”

그 상황에서 그렇게 요구할 수 있는 의사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서구 많은 나라에서는 통용되는 질문이지만, 한국에서는 유족의 격렬한 항의를 받기 십상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문장이다. 《효경》에 실린 공자의 말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효경》은 춘추 전국 시대인 BC 8세기에서 BC 3세기 사이에 지어졌다고 추정된다. 대략 2,500년 전부터 동양인의 의식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동양인들은 살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은 뒤에도 몸이 온전히 보전되어야 한다는 사고를 지니고 있다.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도 그러했다. 이 사고방식이 사체를 부검하거나 시신을 기증하는 문화에 장애 요소가 됐다.

기독교 교리도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 신도들이 암송하는 ‘사도신경’에는 ‘부활’에 관련한 구절이 두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예수의 부활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이고, 두 번째는 우리의 부활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이다.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이러한 믿음 때문인지 한국의 기독교인 중에는 부활하기 위해서는 육신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부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것이다.

부검은 ‘사인(死因)·병변(病變)·손상(損傷) 등의 원인과 그 정도 등을 규명하기 위해 시체를 해부·검사하는 일’을 뜻한다. 보통 행정해부(行政解剖:administrative autopsy), 사법해부(司法解剖:judicial autopsy), 병리해부(病理解剖 pathological autopsy)로 나눈다. 한국인에게 부검은 범죄와 관련된 것이라는 의식이 강해 병원에서 “부검을 하시지요”라고 권하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또한 시신 기증에도 부정적이며, 이를 권유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사망자의 장례 절차를 의논하는 유족들에게 “의학 발전을 위해 뇌 은행에 뇌를 기증하면 어떨까요?”라고 묻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부검, 시신 기증, 뇌 기증이 활발하다. 질병으로 사망한 환자를 부검케 하여 그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법을 찾는 일에 열려있으며, 시신 기증을 통하여 의학 발전에도 이바지한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우리 몸의 부활과는 관련이 없다.

2018년 《사이언스 타임스》 김병희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마운트 사이나이의대 연구진이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그 외의 질병이 있는 사람과 정상인 600명 이상의 사후 뇌 조직을 얻어 뇌의 어떤 유전자들이 문제이고, 이 유전자들이 치매의 발병 및 진행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연구했다. 이 연구는 600명 이상이 뇌를 기증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학자들에게는 뇌를 기증받아 연구하는 일이 요원해 보인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부검이 증가하고 있으며, 시신 기증도 늘어나는 편이다. 그러나 서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유럽과 미국에는 많은 뇌 은행이 있지만 아시아에는 나라마다 소수의 뇌 은행만이 있다. 한국도 2014년 겨우 뇌은행을 설립했다. 뇌 은행의 기관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증된 뇌의 숫자가 더 중요하다. 의학은 기초 자료가 많이 쌓여야 하기 때문이다.

질병 하나의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선 몇 천 건의 무수히 많은 임상 자료가 필요하다. 그것은 수천 명 이상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서구에서는 사람들의 참여로 이 기초 자료를 꾸준히 축적해 가면서 질병 치료법과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병원이나 연구소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것이 너무 부족하다.

고려대 안암병원 뒤편 길에는 흰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탑 하나가 있다. 감은탑(感恩塔)이다. 그동안 고대 의대에는 많은 사람이 시신을 기증해 왔다. 그것에 감사를 표하고, 기증자들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탑을 세우고 기증자 들의 이름을 돌에 새겼다. 감은탑 건립 이후 시신 기증 활성화와 사회적 인식 변화로 시신을 기증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했다. 매년 4월 세번째 목요일에는 고인들의 뜻을 추모하는 합동 추모제 ‘감은제(感恩祭)’가 열리는데, 이날 발표에 따르면 1982년부터 2023년 4월까지 모두 1474구의 시신이 기증됐으며, 시신 기증 약정도 8224명에 이른다. 이들이 있었기에 의학은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했다. 이 탑에는 기증자들의 아름다운 이름과 함께 이러한 글이 새겨졌다.

성스러운 유체(遺體)는 가장 진실한 교재로 쓰여 의학 지식을 정확(正確)히 하는 데 이바지했으며 거룩한 유지(遺志)는 산 교훈으로 승화돼 인술정서(仁術情緖) 를 함양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미래의 스마트 병원이 온갖 디지털 시설을 갖추었다 해도 서구에서 들여 온 기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기초 자료를 바탕으로 한 질병 치료법을 개발해야 하고, 신약을 개발해야 하며, 그것이 세계 표준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

신체발부수지부모는 백 번 맞는 말이다. 부모가 물려준 몸을 잘 보존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효도이다. 살아 생전에 자기 몸을 잘 보존해 건강하게 삶을 누리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 분명히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후의 시신은 다른 차원이다. 병으로 고통받다 죽을 수밖에 없는 후손들에게 질병 없는 세상을 선물할 미래 의료를 위해 시신 기증이 좀 더 활성화되기를 기도한다.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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