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롭던 5살 심장, 되살려 낸 건 '선한 마음들'
[서동만의 리얼하트 #9]
天地 玄黃
만주 벌판에 서보면 안다.
해 지면 하늘(天)엔 칠흑 같은 어둠(玄)뿐이고,
해 뜨면 흙먼지 이는 누런(黃) 땅(地)만이 끝없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을.
천자문의 첫 구절은 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섯 살 아이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그곳에서 왔다. 아이의 증상은 심했으나 작고 까무잡잡하여 얼핏 보면 청색증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팔로4징에 더하여 방실중격 결손(Atrioventricular septal defect)이 함께 있었으며, 폐동맥이 여기저기 좁아져 있었다[사진1].
아이는 한·중 수교 이후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서울에 올 수 있었고, 개심수술을 받게 되었다. 완전 교정술을 포함하여 세 번에 걸친 수술이 이어졌고, 동종 이식 판막을 삽입 받았으며 어려운 회복 과정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아이가 선천성 심장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집을 나가야 했던 아이 엄마도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Happy family reunion!).
이 후 신통하게도 아이는 그곳에서 제일 좋은 중(고등)학교를 거쳐 의과대학을 무사히 마쳤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정년 퇴임하였던 할머니의 지극 정성이 큰 자극이 되었으리라). 나이 서른이 되어 다시 인공 폐동맥 판막 삽입 수술을 받았다[사진2]. 아직 심장 상태는 완전치 않아[사진3] 투약 관찰이 필요하지만, 안정된 직장에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천지 현황 그 사이에 온전한 존재가 얼마나 되겠는가?
감사할 따름이다.
#이 증례에서 어려웠던 점들
-첫 수술 후 우심실 압력이 대동맥 압력의 2/3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잘 자라지 않는(완고한) 폐동맥의 크기가 문제였고, 그 상태로 퇴원과 귀국을 시킬 수는 없었다. 아이는 비자 문제와 짧은 체류 기간으로 인해 언제 다시 병원에 올 수 있을지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992년 한중 수교에 이어 1999년 재외동포법이 발효되었지만,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중국 동포들은 자유로운 출입국이 가능해졌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 여러 차례의 수술 경비는 상당 했었다.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세종 병원 원장님과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님께 감사드릴 따름이다.
-환자에게 사용된 동종 이식 판막도 문제였다. 1998년 무렵 국내에서는 상품화된 CryoLife 제품을 구할 수 없었다. 다행히 본인이 근무하던 서울아산병원에서 자체로 마련한 동종 이식 판막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사진4], 당시 국내에서 심장이식 수술이 시행되던 유일한 병원이었기 덕분이었다.
-수술 후 심장CT에서 보듯이 주 폐동맥은 크게 만들어 줄 수 있었지만 좌/우 폐동맥 스스로의 발육은 여전히 부진하다[사진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