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정치인도..이럴 땐 ‘가스라이팅’ 주범?

심각한 정서적 영향을 미치며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어떤 유형으로 나타나는지 알아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적 영어사전 메리엄 웹스터가 2022년 올해의 단어로 ‘가스라이팅’을 선정한 적이 있다. 가스라이팅은 개인 간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이슈다.

이 단어는 1938년 ‘Gas Light(가스등)’라는 연극에서 비롯됐다. 1944년에 영국에서 가스라이트(Gaslight)란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내에게 그녀가 환각을 보고 상상을 한다고 주장해 자신의 아내를 미치게 하려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 건강정보 매체 ‘에브리데이헬스(Everyday Health)’가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스라이팅의 유형을 소개했다. 심각한 정서적 영향을 미치며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가스라이팅이 어떤 유형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4가지를 알아본다.

미국심리학회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감정적, 심리적 조작의 한 형태로 피해자의 정확한 관찰, 관점, 현실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행위를 포함한다. 예일대 감성지능센터 공동설립자이자 부소장인 로빈 스턴 박사는 “심리적 조작에 의해 결국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성격, 기억, 극단적인 경우 정신상태까지 자신에 대해 의심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스턴 박사에 의하면 가스라이팅은 간단하게 말해 ‘누군가의 현실을 조작하는 행위’다.

미국 국립가정폭력 핫라인은 가스라이팅을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일정한 힘과 통제력을 갖게 하는 매우 효과적인 형태의 정서적 학대라고 정의한다. 가스라이팅은 연인관계에서 주로 나타나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우리 일상의 많은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우 가까운 관계에서 더 비일비재하다.

유형 1 _ 상대를 통제하려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커플 가스라이팅’

연인이나 결혼 관계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가스라이팅한다면 그건 정서적 학대다. 이런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을 무력하게 하며 결국 피해자가 자기 자신이나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가해자가 더욱 쉽게 통제하고 조작하도록 하고, 가해자를 떠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2019년 미국사회학리뷰(American Sociological Review)에 발표된 한 사례 연구에 의하면, 친밀한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은 불평등과 성별에 기반한 고정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자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현실을 조작하는 데 사용된다. 이는 가해자의 학대가 진짜가 아니거나, 대수롭지 않거나,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가스라이팅 당하는 사람을 설득함으로써 발생한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들이 가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데 사용되며, 피해자는 조종 당하고 관계를 끝내지 못하게 되기 쉽다.

유형 2 _ 인종차별 경험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인종적 가스라이팅’

인종적 가스라이팅은 인종차별에 관한 누군가의 경험을 약화시키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조작의 한 형태다. 인종적 가스라이팅은 미묘하게 일어나는 은밀한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 일상생활에서 이뤄지는 미묘한 차별)에서 그들의 성격, 신뢰성, 지적 능력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을 통해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소수자의 경험을 최소화하는 보다 노골적인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반 아시아 혐오 범죄가 크게 증가하고 있음에도 백인 친구가 아시아계 미국인 친구에게 ‘너는 진보적인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에 표적이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피해자에게 정서적으로 해롭고 무례한 것을 넘어, 이런 유형의 인종적 가스라이팅은 또한 체계적 제도화를 보호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2017년 ‘Politics, Groups, and Identities’ 저널에 실린 연구 리뷰는 인종적 가스라이팅이 인종적으로 억압적인 규범, 태도, 행동을 정상화하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게 만든다고 보고하고 있다.

유형 3 _ 의사가 환자에 가하는 권력으로부터 ‘의학적 가스라이팅’

의료계에도 만연하다. 2022년 BMJ 저널에 따르면 의학적 가스라이팅은 의료인이 환자의 증상을 심리적 요인 탓으로 돌리거나 환자의 질병이나 증상을 전적으로 부인하거나 묵살하는 경우를 말한다.(지금까지 용어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가 있는 건 아니다.)

의료진이 항상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질환을 진단하는 데 맹점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료현장에서 의사와 여성 환자의 관계에서 더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된다.

‘Academic Emergency Medicine’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여성들은 같은 증상을 가진 남성보다 약 33% 더 오래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하게 또 다른 연구는 여성이 암을 진단받기 위해 남성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 또한, 여성들은 외상성뇌손상과 같은 다양한 질환에 대해 남성보다 덜 공격적으로 치료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기 위한 연구가 설계된 적이 없으며, 실제 의학적 가스라이팅을 증명하거나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의학적 가스라이팅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려있다. 가스라이팅이 가능한 이유는 종종 기존의 권력 역학과 문화적 요인 때문인데, 이는 주로 소외된 집단이 경험하는 차별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유형 4 _ 정치적 혼란을 위해 조작하는 ‘정치적 가스라이팅’

정치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에 따르면, 정치적 가스라이팅은 정치적 사안에 대한 여론의 주의를 어지럽히거나 혼란스럽게 하는 일종의 ‘부정(不正, dishonesty)혹은 사기’이다.

정치 언론과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미국 조지메이슨대 파라 라티프 박사는 정치적 가스라이팅을 ‘정치적 문제에 대한 여론을 훼손, 동요하거나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오해의 소지가 있고 조작된 정보를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라티프 박사에 따르면 정치적 견해나 이념에 대해 지지를 얻거나 반대를 이끌어 내는 데 소셜미디어가 잘못된 정보를 유도하고 정치적 가스라이팅을 지속시키는 데 사용되어 왔다.

다만 가스라이팅은 친밀한 관계의 맥락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정치적 가식을 가스라이팅으로 특징짓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닥터콘서트
    정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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