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무서워 숨고 싶어요”

[윤희경의 마음건강]

알게 모르게 수많은 이들이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즘은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이 아니라 얼굴에 철가면을 써도 찢어서 강탈해 갈 세상이예요. 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빤히 보면서 물건을 가져가면서 눈도 깜짝 하지 않더라구요. 제가 내것이라고 하면 오히려 덮어쓸 판이였다니까요. 이후부터 모르는 사람이 옆에만 다가와도 놀라서 심장이 발렁거리고 무서워요. 왜 이렇게 인간이 잔인하게 변하는 걸까요. 같은 인간끼리 너무 못할 짓을 하고 사는 꼴을 보니 살고 싶은 의욕이 떨어지고 어디 숨어서 혼자 살고 싶어요.”

흔히 세상살이는 전쟁이라고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싸워가는 것이라는 의미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부추긴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우리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옆에 있는 이들과 계속 되는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전쟁은 필연적으로 희생자를 남긴다. 당장 눈 앞에서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자. 궁긍적으로 무엇을 위해 벌어지는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파괴와 약탈 속에서 결국 무너지는 것은 힘 없는 국민들이다. 아이들은 집과 가족을 잃는다. 노인과 약자도 가장 앞 줄에 선 희생자들이다. 원하지 않았지만,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전쟁이라는 환경에서 버틸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잃는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이 아니라도, 곁을 돌아보면 우리의 삶이 진짜 전쟁과 비슷해보일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는 곳이지, 어울려 자라는 곳이 아니다. 마약을 공부를 잘하게 만들어주는 약이라고 속여 파는 것이 통할 정도로 공부와 등수 같은 경쟁의 숫자들은 아이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어른으로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 자동차, 해외여행 등의 수많은 물질적 기준으로 사람들은 어느사이 등급별로 줄이 세워졌다. 한국의 중산층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연봉이 얼마정도 되어야 하며, 어느 동네에서 어떤 종류의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식의 분류가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닌다. 누군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무능력을 저주하고 좌절한다.

전시에는 용사가 각광을 받는 것처럼, 성공한 이들의 서사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수많은 인플루언서, 짧은 기간에 돈을 번 부동산 갑부들 혹은 주식의 전문가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쟁에서 멋지게 이기는 법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떠든다. 무엇보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들의 희생은 당연하게 본다. 평생 무직을 전전하다 자살한 가족의 죽음 앞에서 제 몫을 못하니 차라리 삶을 버리는 것이 낫다고 보는 가족들도 있다.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 함께 보내는 소소한 시간, 혹은 가끔은 의미없는 일로 채워지는 평범한 일상과 같은 작은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언제부터인가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유명세, 돈, 성공이 포탄처럼 시끄럽게 날아다니는 사회에는 물론 잘나가는 용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전쟁들처럼 희생자는 뒤따른다. 속도와 경쟁에 미처 따라가지는 못하는 이들은 이전보다 더 큰 불안과 우울로 떠밀리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상담소를 찾는 많은 분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감정은 바로 ‘불안’이다. 능력을 과시하는 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이 겪는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불안이 커지면, 아주 작은 사건에 대해서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 든 예처럼 물건을 도둑 맞은 경험때문에 문 밖을 나오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는 되는 지경이 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 부과하면서, 스스로는 세상에서 쓸모 없는 존재로 만들어간다. 이같은 전쟁의 희생자들은 알게 모르게 우울과 불안 속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이러니하다. 약육강식의 공식은 동물들 세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성공의 서사만 가득 찬 세상은 오히려 우리를 ‘인간’답게 살지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때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감하며 더불어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보다는 서로의 탓을 하는 마음이 더 많지 않을까?

나는 가만히 있었지만, 사회 혹은 다른 이들이 나를 공격해 나도 공격적이 됐다고 하는 마음이 많지 않을까? 뒤처지는 이들 따위를 돌아보기엔 나의 상황조차 너무 팍팍하다는 생각이 가득차 있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런 마음을 극단적으로 키우고,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탓하면서 비윤리적 행위와 인상을 찌푸릴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해버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 세상이 전쟁터일뿐이라는 생각에 가득 차 증오와 네 탓을 앞세우기 보다는 내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성찰해 보는 독백을 우리가 먼저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럴 때만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겨누는 불안이 조금이라도 누그러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윤희경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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