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연명 치료 거부... “눈물이 나요”
[김용의 헬스앤]
50대 주부 A씨는 말기 암 환자인 남편이 연명 치료를 거부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평소 배려심이 깊었던 남편이 아내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며 의료진에게 연명 치료 거부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A씨는 병상에서 잠든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착한 사람을 왜 일찍 데려 가나...” 이제 죽음을 앞둔 남편과의 애틋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A씨는 남편이 평소 “난 몸에 기계를 주렁주렁 달고 죽지 않을 거야” 몇 번이고 말한 것을 기억했다. 특히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남편은 연명 치료 중단 의사를 통해 남달랐던 가족 사랑과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했던 것이다.
연명 치료 중단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중단하는 것이다.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이어지기 때문에 이른바 ‘안락사’와는 크게 다르다. 이런 내용은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에 담겨 있다. 올해로 시행 5주년을 맞은 이 법에 따라 미리 연명 치료 중단 의향서(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최근 165만 명을 넘어섰다.
연명 치료만 중단하는 ‘존엄사’와 달리 안락사는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것이다. 의사가 직접 치명적 약물을 주입하는 방식 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하는 '의사 조력 사망' 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더 뿌리를 내린 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등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연명의료결정법을 통해 25만 명이 넘는 사람이 존엄사를 선택했다. 하지만 미리 작성한 사전의향서에 의한 존엄사는 6% 정도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들이 임종 직전 결정했다. 의사 표현이 가능한 환자의 의지나 가족의 동의로 산소호흡기 등을 떼는 연명 치료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개선할 점이 적지 않다. 말기 환자들이 많은 요양병원에선 존엄사를 할 수 없는 곳이 상당수다. 연명 치료를 중단하려면 병원 내의 의료기관윤리위원회에서 심의를 해야 하는데, 많은 요양병원들이 여건 상 윤리위원회를 설치 못한 상태다. 환자가 존엄사를 위해 오래 있던 병원을 떠나 대형 종합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비극’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참담할 수밖에 없다. 회생이 아닌 죽음을 위해 병원을 옮기다니...
환자는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사전의향서까지 작성했는데 주변 환경이 ‘품위’와는 거리가 먼 곳이 적지 않다. 산소호흡기 등 기계장치만 달지 않았을 뿐 많은 환자들이 6인실 이상, 많게는 수십 명의 환자가 신음하고 있는 병실에서 생을 마무리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이 편안하게 쉬었던 집에서 임종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지난해 사망자의 74.8%가 의료기관에서 숨졌다.
연명의료결정법이 더욱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말기 환자라도 '죽음'이란 말은 금기의 영역이다. 간병에 지친 가족들도 막상 환자의 존엄사를 얘기하면 고개를 젓는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검증되지 않은 약재를 찾거나 대체의학에 기대는 경우도 있다. 끝내 온몸에 기계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로 이어진다. 자녀들은 부모의 ‘마지막 모습’에 가슴을 친다.
92세의 노인이 100세가 되면 곡기(곡식으로 만든 음식)를 끊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스스로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죽음은 노인들만 떠올리는 단어가 아니다. 암 등 질병이 늘어나는 중년, 사고가 많은 30대 청년도 죽음을 말할 수 있다. 죽음이 더 이상 금기의 단어로만 머물러선 곤란하다. 존엄사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인식부터 확대해야 한다.
환자의 의지로 약물 등을 주입하는 안락사는 아직 성급한 것 같다. 연명의료결정법 체감도부터 더 높여야 한다.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서야 연명 치료 중단이 결정되면 가족 간에 갈등도 싹 틀 수 있다. 건강할 때 사전의향서 작성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사실 ‘연명 치료 거부’는 가족 사랑이 바탕이다. 아울러 본인의 마지막 ‘품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간병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요즘 죽음과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공감대를 더욱 넓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