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임종 선언했는데, 맥박이 뛰고 있다니…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환자 사망과 의사 소명

병원에서는 수많은 임종을 함께 하게 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84년 초급 1년 차 전공의 때 일이다. 간암으로 입원한 환자가 있었는데 암이 인근 장기로 전이해 결국 돌아가시게 되었다. 임종 시간이 다가와 나는 그 환자 옆에서 보호자(부인)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돌보는 환자가 무척 많아 몸은 피곤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타인이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기란 인간에게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이윽고 그의 심장이 멈추었다. 심전도 모니터에서 ‘삐-’ 소리가 났다. 몸의 모든 기능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임종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울렸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느낌이 강렬했다. 나는 마음 속에서 깊은 죽음의 순간을 깨달았다. 그는 60대 초반의 교회 장로였다.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의 얼굴에 흰 모포를 덮고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손의 맥박을 짚었다. 그런데 손은 따뜻했고, 맥박도 뛰고 있지 않은가! 나는 너무 놀라 헉, 소리를 냈다. 0.01초의 짧은 순간에 ‘오진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모포를 젖혔다. 그런데 내가 잡은 손은 고인의 손이 아니라 그 옆에 서 있는 사모님의 손이었다. 사모님의 손목을 잘못 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해서 급히 손을 뺐다. 그런데 사모님이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저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 저의 손까지 잡아 주시다니…….”

임종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교회 새벽 종소리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그날의 차가운 새벽 공기와 종소리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병원에서 많은 임종을 함께하면서 그때마다 영혼이 떠나가는 느낌 속에 있었다. 육체에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는 각자의 믿음이다.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현세에서 더 많은 것을 이루려 하고, 더 선량하게 살아가는 듯하다.

초년병 의사였을 때 임종 환자를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호흡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구급차 안에는 운전기사, 나, 환자, 보호자 4명이 탔다. 죽음이 임박한 말기 암 환자, 말기 심부전 환자, 간경변증 환자들이 병원에 왔다가 며칠 뒤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았다. 나는 그 환자들을 싣고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마지막 죽음의 장소가 집이기를 바라는 가족들을 위해 ‘호흡기 앰부 백(Ambu Bag)’으로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 주어야 했다. 어떨 때는 하루에 세 번이나 시신을 옮기기도 했다. ‘내가 의사가 아니라 장의사인가!’ 라고 혼동할 정도였다.

한 번은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군포시까지 환자와 보호자를 태우고 갔다. 큰 길에서 벗어나자 시골길이 나타났는데 비포장도로라 구급차가 덜컹거렸다. 아무리 천천히 운전해도 환자의 덜컹거림을 막지 못했다. 집에 도착해 보니 시골의 낡은 기와집이었다. 안방에 눕히고 호흡기 앰부 백을 멈추니 몇 분 후 그는 사망했다. 나는 의사로서 공식 임종 선고를 했다.

“000 님은 0000년 0월 0일 00시에 사망했습니다.”

조의를 표하고 구급차에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 포장도로에 올라섰을 때 문득 운전기사가 물었다.

“호흡기 앰부 백 가지고 왔나요?”

아차, 싶었다. 그 집에 그냥 두고 온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차를 돌려 그 집에 당도했다. 차 문을 열자마자 냄새가 코를 찔렀다. 30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고인의 것들을 벌써 태우고 있었다. 마당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고무로 만들어진 호흡기 앰부 백도 불길 안에서 수명을 다하는 중이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실수로 다음달 월급에서 10만 원이 공제됐다. 그때 내 월급이 30만 원이었다.

유족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의사가 환자나 보호자의 짐을 덜어줘야지, 아픈 가슴에 짐을 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나 보호자와 고통, 슬픔, 운명을 나누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존재다. 그런 내공이 쌓이는 과정에서 시나브로 환자와 기쁨을 나누는 빈도가 더 많아지며 자신의 소명에 감사하게 되는 직업이다.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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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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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yo*** 2023-10-12 15:12:05

      유족을 배려하시는 모습이 넘 보기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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