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기가...", 인공판막 탓 와파린 복용 환자의 소망
[서동만의 리얼하트 #4] 팔로4징 수술 환자의 임신
“얘들아~”
환자는 키가 훤칠하고(174㎝) 체질량지수(BMI) 21㎏/m2인, 자기관리를 잘 하는 중등교사였다.
환하고 선한 표정에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 반 아이들 모두를 무척 사랑한다고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칠 때 아이들과 나누는 소란스런 인사가 행복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30대 중반, 용기를 내어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
용기를 내다니?
그녀는 팔로4징 때문에 두 돌이 되기 전에 완전교정술을 받았고, 이후 두 차례의 추가 개심 수술과 두 차례의 시술을 더 받았다. 스무 살에 기계식 인공 폐동맥 판막 대치 수술을 받았고 체내 거치용 제세동기(ICD)도 함께 이식받은 상태다.
환자는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인공판막을 보호하기 위해 먹는 혈액응고방지제(와파린)는 임신 초기에 태아에게 해로울 수 있다.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을 지 두렵다고도 했다. 한 두 차례 고비를 맞기도 했다. 피떡(혈전) 때문으로 의심되는 판막 움직임의 장애가 나타나 혈전 용해를 위해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의 인내와 간절한 기도, 그리고 가족들의 격려로 마침내 건강한 아기를 품에 안았다. 감사!
환자의 문제
이 환자는 생후 16개월에 완전교정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고 수술 후 관리도 잘 된 편이다. 그러나 심실성 부정맥으로 인해 여러 차례 실신해 그때마다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됐다. 사춘기 무렵에 타 병원에서 부정맥 시술(고주파 전극도자절제술)을 받았으며, 좁은 폐동맥과 우심실 유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종 판막 일부를 넣어주는 개심수술도 한 차례 더 받았었다. 20대 초반에 우심실 기능이 떨어져 인공 폐동맥 판막을 필요로 했으며, 반복되는 부정맥에 대처하기 위하여 제세동기를 몸 안에 심는 것이 꼭 필요했었다.
이때 인공판막의 선택이 관건이었다. 이미 여러 번의 수술과 시술을 겪어 심리적으로 지쳐 있던 상태여서 환자 자신과 부모님 모두 향후 추가적인 수술을 피하고 싶어했고, 따라서 기계식 판막을 선택했다. 결혼이나 임신을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기계식 인공 판막을 이식하면 평생 혈액 응고 방지제를 복용하는 것이 필수다. 이 약은 출혈 성향을 증가시키므로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통해 혈액응고수치(PT INR) 지표를 관리한다.
한편, 임산부가 모르고 이 약을 복용하면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임신이 확인되는 즉시 경구 와파린에서 피하 헤파린 주사제로 바꿔 출산 직전까지 유지하다가, 출산 즈음에는 정맥 주사 헤파린을 맞는다. 출산 후 출혈의 위험이 사라지면 다시 와파린을 복용하면 된다. 이처럼 세심한 관리를 통하면 기계식 인공 판막을 가진 가임기 여성도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
이 환자는 수술(완전 교정술)과 테크놀로지(인공 판막, 체내 거치용 제세동기) 그리고 온 가족의 정성이 한 데 모여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다.
☞인공 판막이란
1953년 이후 인공심폐기를 사용해 개심 수술이 가능하게 되자, 많은 흉부외과 의사들이 심장 판막의 협착이나 폐쇄부전을 일으키는 구조적인 병변들을 수술로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기계식 인공판막에 있어서는, 1960년부터 새장처럼 만든 구조물 안에 움직일 수 있는 공을 넣어 혈류의 흐름을 원활히 해보려는 시도들(Ball & cage 판막)을 했다. 1962년 미국의 흉부외과 의사 알버트 스타(Albert Starr)가 개발한 판막이 한동안 널리 사용됐으며 1969년 스웨덴 외과의사 비킹 비요크(Viking Björk)가 개발한, 하나의 디스크를 이용한 틸팅 디스크(Tilting disc) 판막 등이 실제 환자에게 사용됐다. 그러나 두 가지 판막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1977년부터 사용돼 내구성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카본(Carbon) 제재의 2엽 인공 판막(St. Jude bileaflet 판막)이 보편적이다. 이러한 기계식 판막은 구조적으로 간단하며 내구성은 훌륭하지만 판막 주위로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야 하므로 평생 항응고제를 복용하여야 하며 이 약에 의한 부작용을 감수하여야 하는 단점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식 판막의 내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조직을 이용한 판막의 개발도 1960년대 말부터 지속되어 왔다. 처음에는 환자 본인의 대퇴근막이나 다른 동물의 뇌경질막 등을 이용해 판막을 제작하여 사용하였지만 인체 내에서 섬유화가 쉽게 일어나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었다. 1971년 영국의 매리언 이요네스쿠(Marian Ionescu)는 소의 심낭을 이용한 조직 판막을 개발해 상품화했지만 판막의 석회화와 파열 등에 의한 내구성의 문제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현재 주로 사용되는 조직 판막은 프랑스의 흉부외과 의사 알랭 카펜티어(Alain Carpentier)와 미국의 워렌 행콕(Warren Hancock)이 각자 돼지의 대동맥 판막을 글루타르알데하이드(glutaraldehyde)라는 물질로 처리하여 내구성을 개선하고 지지 구조물을 추가하여 상품화한 것이다. 비록 혈전 생성의 문제점은 극복했지만 내구성에 있어서는 기계식 판막에 견주기 어렵다.
따라서 인공 판막의 선택에 있어서 환자의 나이, 성별, 동반 질환, 사회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하며, 수술 후 위에서 언급된 문제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