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세포가 뭐기에...난치성 혈액암 치료 '새 길' 열리나
질병 진행 막는 효과 확인
국내 연구진이 급성 백혈병 등 난치성 혈액암의 질병 진행도를 대폭 낮추는 차세대 면역 치료법을 내놓았다. 골수 기증자의 혈액 내 면역세포를 환자에게 투여하는 방식이다.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 이규형 교수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최인표 명예연구원(인게니움 테라퓨틱스 최고연구책임자),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조광현 교수팀의 연구 내용이다.
연구팀은 혈액 백혈구에 들어있는 면역세포 중 하나인 NK세포(자연살해세포)를 활용했다. NK세포는 암 세포의 근원이 되는 암 줄기세포를 감지해 파괴하는 기능으로 주목받고 있다.
체내 면역체계에서 최전방(1차 방어작용, 선천면역)을 담당하는 NK세포는 이전의 면역 작용(항원-항체 반응)이 없어도 암세포나 감염성 병균과 같은 항원을 스스로 찾아내고 제거까지 한다는 점에서 후천적 면역세포(T세포나 B세포)와 다르다.
◆NK세포, 골수 이식 후 백혈병 '추가 진행' 막고 '면역력 회복' 도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골수 기증자의 NK세포를 투여받은 급성골수성백혈병, 골수형성이상증후군 환자 40명의 질병 진행도는 비투여군(36명) 대비 절반 가량 감소했다.
이들 환자는 2015~2018년 사이 부모 혹은 자녀 관계의 기증자에게 골수를 이식받은 후, 같은 기증자의 혈액 속 NK세포를 2~3주에 걸쳐 2회 투여 받았다.
이후 연구팀은 2020년 9월까지 최대 30개월 동안 환자의 혈중 림프구 수치, 세포 독성 등을 정기적으로 측정하며 병의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이 결과, 투여군에서 병이 진행한 사례는 35%에 불과했지만, 비투여군에선 61%로 나타났다.
골수이식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의 면역력 회복 정도도 차이가 컸다. 투여군의 백혈구 내 NK세포와 T세포의 평균 숫자가 비투여군보다 각각 1.8배, 2.6배 더 많았다.
전체 관찰 환자 대부분(76명 중 57명)이 골수이식 효과가 매우 낮았음(불응성)에도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NK세포 투여군 중 77%의 병증이 완전히 차도를 보였다. 비투여군(52%) 대비 크게 높은 수준이다.
연구팀은 세포 분석을 통해 그 이유를 찾았는데, 기증자의 NK세포를 투여한 환자들의 혈액 속에는 '암세포를 기억하고 있는 NK세포'(기억-유사 NK세포, memory-like NK cell)의 수가 비투여군보다 34배나 많았다.
즉, NK세포가 이전의 면역작용으로 제거했던 암세포 종류(항원)을 기억했기 때문에 재차 암세포를 공격하고 제거하기 쉬웠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억-유사 NK세포가 T세포의 '면역 기억반응'(메모리 CD8 T세포 증식)에도 영향을 줘 항암 효능을 더욱 높였다.
◆ "임상 2상 준비 중... 난치성 혈액암 치료 대안 제시"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난치성 암 치료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고 자평했다. NK세포를 활용한 면역 항암치료 방법과 관련해 지금까지의 연구 중 가장 수준 높은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 대상 질환을 비롯한 고위험군 난치성 혈액암은 기존의 항암 치료제에 잘 반응하지 않는 데다 환자가 골수 이식을 받아도 재발이 잦았기에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요구가 높은 상태다.
이규형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난치성 혈액질환에서 NK세포의 효과를 임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그간 추가 치료가 불가능했던 많은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NK세포 치료제 개발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2000년대 초부터 말초단핵구로부터 NK세포를 분화·증식시키는 핵심 원천 기술을 개발해왔고, 인체 면역시스템 연구를 기반으로 암환자의 항암면역NK세포치료제 및 관련 면역항암제 개발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기업인 인게니움테라퓨틱스에 기술을 이전해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이번 연구는 연구자 주도 임상 2상으로 진행했으며, 결과는 혈액암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루케미아(Leukemia, IF=12.897)' 온라인판(https://www.nature.com/articles/s41375-023-01849-5)에 게재됐다. 후속 연구로는 NK세포 치료제의 '조건부 허가'를 위해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군을 대상으로 국내 의료기관 3곳에서 일반 임상시험 2상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