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 앞두고, 심장도 수술해야 한다니…
[서동만의 리얼하트 #2]
암이란다. 방광암.
내일 모레면 환갑인데.
수술?
받아야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심장 재수술이 먼저 필요하단다.
45년 전 봄이 다시 떠올랐다.
13살 사춘기 소녀 시절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작고, 까무잡잡하고, 항상 쪼그려 앉아 있고.
또래들의 활기와 무지개 같은 분위기가 없었다.
선천성 심장병, 팔로4징 때문이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병원을 제대로 가보지도 못하고 지내다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서울로 올라가 당대의 유명하신 H대병원 K교수님께 수술을 받았다.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모르는 채 중환자실에 있었다.
밤 낮 구분 없이 창백한 형광등 불빛으로 가득한 공간.
그치지 않는 기계들의 소음과 부산한 발걸음 소리와 다급한 외침들.
입안에는 재갈을 물린 듯 불편한 무엇들이 그득하고,
온 몸을 지배하는 통증.
그래도 얕은 잠에서 깨어나, 높이 자리 잡은 작은 창으로 옅은 핑크 빛 새벽이 다가올 때에는, 안도감 속에서 다시 잠 들곤 했다.
중환자실에서만 한 달도 넘는 시간이 지나갔고, 그렇게 오랜 병원 생활 후 좋아져 서울 아이들만큼 환해진 얼굴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서울 병원에 가지 않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면서.
그런데,
아이 둘 낳고 잘 살아왔는데,
그 심장이 다시 문제라니.
그녀는 즉각 재수술을 받았고, 심장기능이 회복된 3개월 후 방광암에 대한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그녀의 기도는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모든 것은 해피 엔딩이었다.
팔로4징(Tetralogy of Fallot)은 어떤 병?
혈액에 산소가 부족해 피부가 푸른 빛을 띄는 ‘청색증(靑色症)’이 있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심실중격 결손, 폐동맥 협착, 대동맥 위치 이상(overriding), 우심실 비대의 4가지 특징적 소견을 보인다. 1888년 프랑스 의사 팔로(Etienne-Louis Arthur Fallot)가 처음 기술한 뒤, 그의 이름을 따서 이처럼 불리고 있다.
선천성 심장병은 크게 청색증이 없는 경우와 청색증이 있는 경우로 나눠지며, 팔로4징은 청색증이 있는 심장병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심실중격결손이 있고 폐로 가는 통로가 다양하게 좁아서 폐로 가는 혈액이 부족해지며, 온몸을 돌면서 산소포화도가 낮아진 혈액(desaturated)이 폐순환을 거치면서 산소포화도가 높아진 혈액(oxygenated)과 심장 내부에서 섞이므로 입술, 손가락, 발가락 등이 파란 빛으로 변한다.
환아들은 덜 움직이고, 쪼그려 앉기를 좋아한다. ‘완전 교정술’을 받으면 청색증이 사라지면서 외견상 드라마틱한 호전을 보인다. 그러나 폐동맥 자체의 발육 부전, 폐동맥 판막 협착 및 폐쇄부전, 우심실 유출로 협착, 삼첨판막 폐쇄부전, 우심실 수축력 저하, 부정맥 등의 문제들이 남아있을 수 있어 성인이 된 이후에도 흉부 엑스선 검사, 심전도 검사, 심장초음파 검사,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 등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며,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위 환자는 심장초음파 검사와 CT 검사 결과 우심실 용적이 많이 늘어나 있고(이완기/수축기, 200/120ml), 우심실 수축 기능(ejection fraction)이 감소되어 있으며(40%), 심한 폐동맥 판막 폐쇄부전(4+)이 있는 등 심각한 상태였다. 방광암을 수술하려면 전신마취를 해야하고 수술 위험이 높아 심장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했었다.
부실한 폐동맥 판막 대신 인공조직판막을 심고, 늘어난 우심실 일부를 줄여주는 수술을 받았으며(사진), 다행히 3개월 뒤 모든 수치들이 정상 범위로 돌아와 암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팔로4징 수술은 어려운가?
환자가 완전교정술을 받았던 1970년대 중반에는 쉽지 않은 수술이었다. 특히, 체중 10 Kg 이하의 환아들에서의 수술 성공률은 낮았다.
1953년 미국에서 개심 수술을 첫 성공한지 오래되지 않았고, 우리나라 의료 수준이 상당히 뒤떨어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1977년 처음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료보험이 시작했고, 제한된 일부 국민만 대상이었으므로, 많은 환자가 경제적으로 큰돈이 들어가는 심장 수술을 받기는 어려웠다. 그 무렵 많은 택시에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 모금함이 달려 있었고, 유명한 개그맨이 전국을 돌며 이 아이들 돕기 성금 모금을 위한 자선공연을 벌였다. 필리핀이나 한국의 대통령 부인이 어린이심장재단을 설립해 아이들의 심장 수술을 돕는 일이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었다. 1983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부가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갈 때 심장병이 있는 아이들을 치료해주고자 미국으로 데리고 가는 장면은 큰 뉴스거리였다.
그러나 국민 개보험이 완성된 1989년을 즈음하여 경제적, 의학적 모든 면에서 좋아져 오늘날 물심 양면으로 안심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팔로4징도 제대로 진단받아 치료받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대, 필자가 전공의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미래가 온 것이다.
팔로4징 환자(58세 여성)의 심장 재수술 전후 CT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