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건강 위해 '동물 건강' 연구하는 이유
동물 생활 방식, 유전적 특성 등 인간에게 적용
기린은 인간보다 혈압이 2배 이상 높지만 고혈압에서 기인하는 심장병, 뇌졸중, 신장병 등이 생기지 않는다.
동물의 건강 비결은 무엇일까? 미국 로렌스 J. 엘리슨 변혁의학연구소 대표인 데이비드 아구스 박사는 CBS뉴스를 통해 "동물은 사람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비밀스러운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로 새가 있다. 과학자들은 치매 예방법을 찾기 위해 새를 연구한다. 새는 멀리 떨어진 목적지도 어렵지 않게 찾는다. 치매를 막는 방법을 찾기 위해 새의 이러한 인지능력을 연구하는 것이다. 새는 멀리 이동할 때 랜드마크를 활용한다. 패턴 인식 및 신체 활동을 통해 인지능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아구스 박사는 장기적으로 동물을 관찰·연구함으로써 인간의 건강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알츠하이머, 심장병, 암 등은 인간 문명과 연관된 질환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환들은 인간의 생활 방식과 연관을 보이며 동물에서는 드물게 발생한다. 동물의 생활 방식을 연구하면 질병을 100% 막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발병 시점을 인생 후반기로 지연시키는 효과는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25%가 암에 걸려 사망할 때, 코끼리는 단 5%만이 암으로 사망한다. 그 차이가 큰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코끼리 체중이 사람의 100배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큰 차이다. 사람 중에도 체중이 많이 나가고 키가 큰 사람이 암에 더 잘 걸린다. 몸집이 크다는 건 세포 수가 많다는 의미로, 그 만큼 암을 일으키는 세포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사람과 코끼리는 세포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코끼리는 사람의 100배에 해당하는 세포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에 잘 안 걸리는 이유는 뭘까?
이는 코끼리가 암세포를 퇴치하는 유전자를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암 억제 유전자인 p53을 2개 갖고 있다. 하나는 엄마, 다른 하나는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다. 반면, 코끼리는 이를 무려 40개나 갖고 있다. 미국 헌츠먼 암 연구소가 코끼리의 p53 유전자를 복제해 인간의 암세포에 넣자 산산조각 나듯 사라진다는 점이 확인됐다.
다양한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박쥐도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기인했을 것이란 자연기원설이 있다. 코로나19는 인간에게 팬데믹을 일으켰지만, 정작 박쥐는 이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박쥐는 인간에게 유해한 150종 이상의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바이러스들로 건강이 나빠지지 않는다. 박쥐의 유전자 지도를 밝히는 일은 미래 감염병에 대응하는 유용한 정보가 될 예정이다.
인간과 동물의 생활 차이, 유전적 차이 등을 규명하는 것은 인간의 건강을 개선하는 중요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과학자들은 동물 건강권뿐 아니라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도 이 같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