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에 참여하면 진짜 거금을 받을까?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의견이 여러가지로 갈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하철을 타면 간혹 전철 광고판에 ‘시험 대상 모집’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광고판은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대부분 문 옆에 붙여 놓았고, 글씨만 있을 뿐, 사진이나 그림은 드물다. 서체는 멋을 부리지 않은 명조체나 고딕체가 주를 이룬다.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의학적 치료 또는 의약품 개발을 위해 임상 시험 대상자를 모집한다. 예컨대 당뇨병 치료를 위한 시험 대상을 모집하는 문서에는 제목 아래 자격을 비롯해서 여러 사항이 나열돼 있다. 마지막에는 시험을 추진하는 병원 이름과 연락처가 명기돼 있다. 병원은 대부분 대학병원이며 1, 2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 합동으로 추진하는 때가 많다.

내가 만약 대상으로 선정된다면 인간이 아닌 모르모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시술을 받거나 개발 중인 의약품을 먹는다면 훗날 내 몸에 후유증은 없을까? 적게는 5~6회, 많게는 10회 이상의 시험을 받으면 어떤 혜택이 있을까? 광고문에는 소정의 비용을 드린다고 되어 있는데 과연 그 ‘소정의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인간을 시험 대상으로 삼는 영화는 여러 편이 제작됐다. ‘블러드 워크(2011)’, ‘리무브드(2012)’, ‘텔 미 하우 아이 다이(2016)’ 등이 있다. 유명한 ‘마루타(1988)’는 일본 731부대가 행한 인체 시험의 잔학성을 고발한 중국 영화다.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엑스페리먼트(2010)’는 고립된 곳에서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에 놓인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작품이다.

이러한 영화들은 빈곤한 상황에 놓인 시험 참가자들에게 뿌리칠 수 없을 만큼의 보상을 제시한다. 그러나 100이면 100, 비극적으로 끝난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살아남은 주인공이 피로 물든 얼굴을 관객들에게 돌려 핏발 선 눈동자로 ‘헛된 돈에 유혹되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라’는 무언의 절규를 외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정말 그럴까?

인터넷에 ‘임상 시험 참여’ 혹은 ‘임상 시험 아르바이트’를 검색하면 질문이 적지 않게 나온다. 시험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질문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위험하지 않으냐?’라는 것이고, 둘째는 ‘돈을 얼마나 받느냐?’이다.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사유는 대부분 ‘돈이 급히 필요해서’이다. 임상 시험은 대학병원 연구실의 철저한 관리하에 진행하기에 위험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시험 대상자에게 비용은 많이 주지 않는다. 광고 문구에 적혔듯 ‘소정의 비용’만 지급한다. 임상 시험이 생계 수단이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30일 동안 하는 시험에서 1000만 원을 제공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정도 금액이면 분명 위험한 시험일 거야’라고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1000만 원이라는 금액에 미련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이 지원할 것이다. 나아가 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생겨날 것이다. 의학 발전, 질병 치료에 헌신한다는 목적보다 돈을 위해 시험 대상이 되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반면 미국에는 직업이 환자인 사람들도 꽤 있다. 아직 의학적으로 미해결 과제들을 위한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생활비를 버는 것이다. 예컨대 인슐린이나 위액 추출 등 당뇨병 기제를 밝히기 위해 자기 몸을 선뜻 내놓는 셈이다. 익히 아는 것처럼 당뇨병은 완치가 사실상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당뇨로 고통받는 사람은 500만 명이 넘는다. 심하면 다리 등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무서운 병이다.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시험에 참여하면 미국에서는 1일에 300달러 정도를 받는다. 3일 동안 약 1000달러(우리돈 약 120만원)를 받으니 적지 않다. 의학 시험에 한 달에 두 건만 참여해도 생활비를 너끈히 벌 수 있다. 아예 ‘환자’를 직업 삼아 여러 병원을 순례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사람들이 의학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했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처럼 갑작스레 새로운 질병이 등장하면 치료제와 예방 접종약을 신속히 개발해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그래서 기니피그, 토끼, 돼지, 원숭이 등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과거에는 여기에 큰 반대가 없었지만 ‘동물권리’를 주장하는 사람과 단체가 늘어나면서 동물로 실험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필자가 1996년 미국 시더스사이나이병원에서 근무할 때 동물 실험을 하는 날이면 용케도 그날 스케줄을 미리 알고 찾아와 실험 빌딩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동물 보호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면 그날 실험은 중단되고 날짜는 연기된다. 아무리 인간을 위한 것이라 해도 동물 보호 단체가 시위를 벌이는 날 그들을 무시하고 실험을 계속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에는 인간 아바타를 만들어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 새로운 질병의 바이러스를 주입하여 치료법을 개발하고 예방 접종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 인공지능(AI)이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사람과 똑같은 환경에서 각종 실험을 해서 치료법을 개발해 낼 수 있다. 동물을 보호할 뿐 아니라 효율이 좋은 치료 약과 시술법을 완성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고, 병원마다 보유한 환자들의 데이터가 표준화되어야 하고, 이를 취합해야 하는 과제가 첩첩산중으로 놓여 있다. 어려운 과제이지만 앞으로 시행할 실험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점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동물의 희생과 뜻있는 사람의 참여를 없앨 수 없다. 과학적 검증 없이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으므로.

 

 

 

    김영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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