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대신 환자를 봤더니 이런 기적이…
[김영훈의 참의사 찐병원] 평생 가슴에 새긴 철칙
피아노 학원 원장이 상담실에서 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장실 옆에는 작은 방 4, 5개가 있었다. 방에서는 초·중학생들이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방음장치가 돼 있었지만 밖에서 소리들이 전부 들렸다. 어머니는 4, 5대의 피아노 소리가 동시에 들리기에 아이들이 도대체 어떤 곡을 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원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3번 방의 유리창을 두드렸다.
“방금 거기 틀렸어. 미가 아니라 솔이야.”
어느 분야든 능숙한 사람은 잘못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낸다. 일반인은 도무지 알 수 없고, 또 설사 약간 잘못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듯한 것도 올바로 고쳐야 직성이 풀린다. 그 때문에 일이 더 복잡해지고 시간이 걸려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 사실 그것이 옳다. 의사는 어떠할까?
1990년대에 나는 젊은 의사로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50대 후반 남자의 심장부정맥 시술을 했다. 4시간에 걸친 긴 시술이었는데 시술이 끝난 뒤 그는 쇼크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가능한 약을 주입해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더 쓸 수 있는 묘약이 없었다. 담당 의사였던 나는 그가 누워있는 중환자실에 1시간마다 가서 살펴봤지만 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었다. 환자의 몸에 붙인 센서를 통해 산소포화도가 표시되고 있었는데, 90 이상이 돼야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90에서 85로, 70으로 계속 떨어지기만 했다. 산소흡입량을 늘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새벽 2시에 보호자에게 말했다.
“임종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가족들은 큰 실망과 충격에 휩싸여, 내 손을 잡고 어떻게든 해보라고 간절하게 요구했다. 나는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연구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며 왜 산소포화도가 계속 떨어지는지 이유를 찾아 끊임없이 고민했다. 한숨 속에서 모니터의 숫자는 속절없이 내려가기만 했다.
나는 환자 옆에 앉아 그를 지켜보았다. 문득 그가 누운 침상의 머리 부분을 약간 올려보았다. 핸들을 돌리자 침상이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때 내 눈을 의심하는 일이 벌어졌다. 모니터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침상을 위로 더 올릴수록 산소포화도는 더 높아졌다. 나는 ‘기계가 잘못되었나’ 하는 의심이 들어 침상을 내렸다가 다시 올려보았다. 기계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숫자는 이윽고 100을 가리켰다.
심장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침대를 20~45도 각도로 올려 눕히는 ‘반좌위자세(Semi-Fowler’s Position)‘가 기본이었던 것이다.
새벽 3시였다. 그는 몇 시간 뒤 의식을 찾았고 며칠 뒤 건강한 몸으로 퇴원했다. 낙담과 좌절의 얼굴이 환하게 바뀌어 고마워하던, 가족의 눈물 젖은 눈들을 잊을 수가 없다. 만약 내가 그때 기계만 쳐다보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옆에서 환자를 살피지 않았다면 한 생명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진료 철칙 하나를 마음에 새기고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현대의학의 모든 방법을 동원한 뒤에도 치료가 되지 않으면 ‘환자 옆에 있어라’는 철칙이다.
물론 단지 환자 옆에 있다고 해서 모든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의심이 들고 의구심이 생기는데,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없을 때에는 환자 옆에서 면밀하게 관찰하면 실마리를 풀 수도 있다. 기계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이런 철칙은 디지털 의료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게 될 미래의 병원에서도 유효하다. AI가 의료의 중심에 들어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