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에 대한 위임 어디까지인가?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대 의료는 점차 분업화, 세분화되고 있어 각 의료 종사자 사이의 긴밀한 협력은 필수다. 특히 대학병원은 입원 환자를 진료하는데 직접 환자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전공의와 환자 치료를 위임하고 전공의를 지도 및 감독하는 대학교수가 있다. 흔히 환자를 직접 담당하는 전공의를 담당의, 환자 치료를 위임하고 담당의를 지휘·감독하는 교수는 주치의라고 한다.

교수가 지휘감독관계에 있는 전공의를 신뢰하고 자신의 의료행위를 위임했지만 위임받은 전공의 과실로 환자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교수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참고로 행위자가 스스로 주의 의무를 다하면서 참여자도 이 같이 할 것을 믿고 있는 경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참여자가 규칙을 준수하지 않아 피해가 생겼더라도 행위자는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신뢰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런 원칙은 교수와 전공의와 같이 수직적인 지휘·감독 관계에선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이와 관련 다른 판결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82세 환자 A는 뇌경색으로 신경과에서 진료를 받던 중 대장암으로 인한 장폐색소견으로 소화기내과로 전과됐다. 내과 전공의 B는 본인이 시행한 신체검진상 복부팽만이나 압통이 없고, 배변이 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대장내시경검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해 소화기내과 교수 C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교수 C는 대장내시경 검사와 장정결제 투여를 승인했다. 전공의 B는 장정결제 2리터를 30분 간격으로 4회에 나누어 투여하고 다시 다음날 5시 같은 요령으로 2리터를 추가적으로 투여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환자 A는 장폐색으로 인하여 장정결제 투여로 인한 가스와 장내분변이 제대로 체외로 배출되지 못해 장천공 발생 및 다발성장기부전으로 인해 숨졌다.

이에 검찰은 전공의 B와 교수 C에 대하여 장폐색이 있는 환자에게 장정결제를 투여한 것과 함께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장정결제를 투여할 경우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1심에서 교수 C는 금고 10개월, 전공의 B는 금고 10개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심도 교수는 금고 1년 집행유예 3년, 전공의 B는 금고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전공의 B가 환자 및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 및 이에 따른 장정결제 투여의 위험성 및 부작용을 설명했다면 환자 A와 그 가족은 장정결제 투여 자체를 거부하거나 통상적인 투여방법 대신 좀 더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장정결제를 투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의사 설명의무를 위반하였고, 장폐색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대장내시경을 시행하는 경우 소량씩 장정결제를 투여하여 부작용 유무를 조심스럽게 확인한 후 폐색이 더 진행되거나 흡인성폐렴이 의심되는 경우 중단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행하지 않은 것은 환자 진료에 대한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을 인정하면서 금고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교수 C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수련병원에서 주된 의사가 지휘·감독관계가 있는 다른 의사에게 의료행위를 위임하더라도 전적으로 위임된 것이 아닌 이상 자신이 담당하는 환자를 확인하고 감독할 주의의무가 있고,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위해가 발생하였다면 주된 의사는 이에 대한 과실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전적으로 위임된 것인지 여부는 위임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즉, 전공의 B의 의료행위에 관하여 교수 C의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려면 부분장폐색 환자에 대한 장정결 시행 빈도와 처방 내용의 의학적 난이도, 전공의 B의 소화기내과 업무 담당 경험이 미흡하였거나 혹은 기존 경력에 비추어 적절한 업무 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여 전공의 B에게 장정결제 처방 및 그에 대한 설명을 위임한 것이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있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으로, 단순히 교수 C가 전공의 B를 지휘·감독하는 지위에 있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수행하지 않은 장정결제 처방 및 환자 및 보호자에게 장정결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없다고 하면서 무죄로 판단하였다. (대법원 2022.12.1. 선고 2022도1499판결)

정리하면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할 때 이에 대한 위험성과 필요성을 환자 및 보호자에게 자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또 검사나 치료를 할 때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하여야 한다. 대학병원과 같은 수련병원에서 교수는 입원환자 진료를 전공의에게 위임하면서 해당 전공의를 지휘·감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교수의 위임을 받은 전공의가 시행한 의료행위에 문제가 있어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었을 경우 의료행위를 위임한 교수의 책임 여부는 위임을 받은 의사의 자격, 평소 수행한 업무, 위임 경위와 상황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환자진료에 대한 위임을 받은 전공의가 시행한 의료행위가 위임을 통해 분담할 수 있는 내용이고 실제로도 위임이 있었다면 위임한 교수에게는 전공의의 의료행위 과실에 대한 형사적인 책임이 면제된다.

    박창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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