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잔의 커피, 몸의 반란에 무릎 꿇은 소설가
[허두영의 위대한 투병]
작가의 24시간은 12시간(집필) + 8시간(수면) + 4시간(잡일)으로 째깍째깍 돌아갔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하루다. ‘저녁 6시나 7시쯤 잠을 잡니다. 닭처럼 말이죠. 새벽 1시에 일어나 8시까지 글을 씁니다. 다시 한 시간 반쯤 잠을 자고 일어나 블랙커피를 한 잔 들고 책상으로 가서 4시까지 일을 합니다. 그 뒤에 목욕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외출 나갔다 온 뒤 저녁을 먹고 잠에 듭니다’.
발자크는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의 짝이 될 총서 ‘인간극’(Human Comedy)을 구상했다. 탈고한 작품 91권과 미완성 46권이다. 진도가 잘 나갈 때는 닷새마다 한 권씩 책을 쓰기도 했다. ‘사흘마다 잉크병이 하나씩 비고, 펜이 열개나 닳아 없어졌다’. 책상 위에 놓인 촛대 여섯 자루에서 양초가 얼마나 녹아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집필도구’는 커피다. 글이 궁해지면 바로 커피를 마셨다. 부르봉, 마르티니크, 모카 원두를 갈아 블렌딩한 뒤 가장 진한 커피로 내렸다. 이렇게 마신 커피가 하루 평균 50잔, 평생 5만 잔쯤 된다. 대략 가늠해 보면 글을 쓰는 내내 16분마다 한 잔씩 마셨다. 커피포트로 한 번에 3잔 끓이는 걸로 가정하면, 48분마다 ‘커피 끓이는 여유’(Coffee Break)을 가졌다.
커피에 관한 한 발자크는 굉장히 까다로웠다. 품종마다 구하는 곳이 달랐기 때문에 원두를 사기 위해서라면 만사 제쳐놓고 반나절을 돌아다녔다. 품종마다 맛이 어떻게 다른지, 블렌딩 하면 또 어떤 맛이 나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글쓰기를 전투에 비유하던 그에게 커피는 개전을 알리는 총성이나 나팔소리 같은 신호였을 것이다. 매일 50번씩 ‘돌격 앞으로!’를 외쳐 문제지만….
어쩌면 발자크에게 커피는 모유나 우유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열여덟 어머니는 32살 연상의 남편과 사랑 없는 결혼으로 2년 뒤 첫 아들을 낳자 바로 유모에게 맡겨 버렸다. 네살에 집으로 왔지만,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여덟살에 입학하면서 기숙사로 들어가 6년동안 집에 가지 못했다. ‘골짜기의 백합’의 주인공 펠릭스처럼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것이다.
‘나폴레옹이 칼로 이룬 것을 나는 펜으로 이룰 것이다’. 나폴레옹을 존경한 발자크가 그 동상 아래 썼다는 야심찬 낙서다. 역시 그는 글을 써야 했다. 출판업과 인쇄업에 손댔다가 잇달아 파산한 뒤 빚쟁이를 피해 숨어 살았다. 큰 빚을 갚기 위해 매일 하루의 절반 이상을 책상 앞에서 소설을 썼다. 하루 50잔씩 마신 커피는 글을 쓰기 위한 ‘연료’였다.
어머니 품이 그리웠을까, 빚 갚을 돈이 필요했을까? 발자크는 줄곧 어머니 같은 연상의 귀부인을 좇아 다녔다. 특히 서른셋에 반한 한스카 백작부인을 18년이나 기다린 끝에 쉰살을 갓 넘은 나이에 결혼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전투’ 명령으로 하루 50잔씩, 모두 합쳐 5만 잔을 들이부은 커피가 결국 몸속에서 ‘내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카페인 중독이다.
오랜 세월동안 과로와 운동부족으로 심장이 붓기 시작했다. 울혈성 심부전과 심비대로 심장조직이 죽어들었다. 1850년 어느 날, 발자크는 잘 아는 의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비앙숑을 불러줘. 그만이 나를 치료할 수 있어!” 그 부탁은 유언이 됐다. 비앙숑은 그의 작품 ‘인간극’에 29번 등장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18년 기다려 시작한 신혼생활은 다섯달로 끝났다. 커피도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됐다. 향년 51세.
[카페인 중독] Caffeine Intoxication.
카페인을 오랫동안 많이 먹으면서 내성과 금단을 보이는 약물의존증이다. 보통 하루에 카페인 250mg(커피 3잔) 이상 계속 들이키면서, 안절부절, 신경과민, 흥분, 울렁증, 구역질, 두통, 불면, 빈뇨, 빈맥, 초조, 소화불량 같은 증상 때문에 정상 생활에 불편을 겪는다. 커피, 홍차, 녹차, 콜라, 코코아처럼 카페인이 많이 든 음료나 식품을 지나치게 탐닉하는 게 원인이다. 심장질환이나 골다공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