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공포' 파킨슨병, 아직도 진단법 없다?!
'비용↓·간편' 심전도 진단법 연구... 조기진단 기대감↑
파킨슨병은 치매와 함께 고령층에게 '공포의 질환'으로 꼽힌다.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중증 질환이기 때문이다. 완치법이 없는 파킨슨병은 특히 조기 진단과 관리가 중요하지만 아직까지도 명확한 진단법이 정립되지 않아 뒤늦게 자신의 증세를 발견한 환자들의 고통이 크다.
이런 난점을 해소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한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주목할 만한 결과를 내놨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간편하게 받을 수 있는 '심전도 검사'를 이용해 파킨슨병을 감별하는 인공지능(AI) 진단기술이다.
◆파킨슨병, 아직 진단법이 없다고?
질병관리청과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파킨슨병은 중증 질환임에도 명확한 진단법과 치료법이 없는 실정이다. 약물 요법으로 병의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현재 파킨슨병을 확진할 수 있는 혈액검사나 뇌 영상검사는 없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뇌조직 검사다. 이는 두개(머리 뼈를 열음) 수술이나 뇌 내시경 수술을 해야 하기에 진단의 이익보다 환자의 고통이 지나치게 크다.
현재로서 파킨슨병 확진은 의료진의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의사의 문진, 인지검사, 뇌 MRI(자기공명영상)나 PET(양전자단층촬영) 결과 등을 종합해 진단한다. 파킨슨병은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기에 환자가 병원을 찾는 시기가 대체로 늦고 의사의 주관적 관찰이 필요해 확진에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이런 난점을 해소하려고 뇌 영상촬영 분석을 고도화하거나 뇌척수액에서 파킨슨병 징후를 알리는 생체지표(바이오마커)를 찾아내려는 연구 등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들어선 AI 알고리즘을 활용한 진단법 개발이 활발하다. 지금까지 환자의 음성 녹음이나 손글씨 패턴, 움직임 영상 등을 분석하는 진단 방식이 약 90% 수준의 정확도로 개발됐다. 이들 방식은 신경 손상에 따른 근육 위축으로 나타나는 손떨림, 경련, 움직임 둔화 등 증상의 특징을 활용한 것이다. 이들 증상도 파킨슨병의 양태적 특성이어서 생체 요인을 반영한 핵심 진단법으로 활용하기엔 논의가 더 필요하다.
◆심전도는 어떻게 파킨슨병을 알려줄까?
고려대 연구진은 심전도 검사 결과를 활용한 파킨슨병 AI 진단 기술의 가능성을 열었다. 파킨슨병의 주요 생체지표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연구팀은 파킨슨병을 감별할 수 있도록 심전도 검사 결과의 특성을 분류하고 이를 기반으로 진단 정확도 87%의 AI 딥러닝 알고리즘을 짰다. 파킨슨병 환자의 심전도 파형 특성을 반영한 딥러닝 분석 모델 개발은 세계 최초다. 고려대 안암병원이 보관 중인 1799명의 파킨슨병 환자의 정밀의료 데이터를 활용했다.
심박변이도(HRV)는 파킨슨병의 발병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는 주요 지표다. 예측 정확도도 85%(AUROC=0.85, 0~1) 수준에 달한다.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이 뇌의 '선조체' 영역에 영향을 미쳐 도파민 분비를 감소시키고 자율신경계의 이상과 장애(배뇨장애, 변비, 발한, 기립성 저혈압 등)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흔히 '맥박'으로 이해되는 심박변이도는 심장 박동의 한 주기에서 다음 주기 사이까지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다. 이는 자율신경계의 영향에 따른 변화다. 건강한 상태에서 심박은 크고 복잡하게 변하지만, 파킨슨병 등의 질병이나 스트레스 상태에선 복잡성이 현저히 줄어 규칙적인 파형을 보인다.
분석 모델은 이 특성을 활용해 심전도 지표에 따른 파킨슨병 환자의 특성을 분류했다. 파킨슨병 발병 여부와 유병 기간, 중증 정도, 잠재적 유발 위험도 등을 특정했다. 특발성인지 약물성인지도 구분했다.
심전도 검사에서 △특발성 환자는 비정상 T파, 방실차단, 좌심실비대(LVH), 심방세동, 동서맥 순으로 △약물성 환자는 비정상 T파, 동빈맥, QT 연장(Q파 시작점에서 T파 종료점 사이의 간격이 정상보다 길게 측정), LVH, 부비동 서맥 순으로 비정상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반면 △파킨슨병이 없는 대조군은 방실차단, 비정상 T파, LVH, 동서맥, 심방세동 순으로 이상 심전도 결과가 진단됐다.
연구팀은 "향후 알고리즘 모델을 고도화하고 여러 병원의 데이터와 임상 추가 검증을 통해 파킨슨병 조기 진단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는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이찬녕·순환기내과 주형준 교수와 고려대 의료빅데이터연구소 유학제 교수, 고려대 의학통계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정세화 씨가 참여했다. 논문은 국제학술지 'Journal of Parkinson's Disease'(IF 5.52)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