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부모까지, 일 년에 ‘제사’가... 시댁 입장은?

[김용의 헬스앤]

제사-차례 음식 준비는 ‘가족 간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 무턱대고 옛날 방식을 답습하기보다는 각자 집안 형편에 맞게 바꿀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집안의 제사-차례를 앞두고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이 여성들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음식을 장만하고 전을 부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제사가 많은 집안의 여성들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갓 시집온 며느리는 제사 숫자에 혀를 내두르고, 중년 여성의 화병도 제사 준비할 때 다시 생긴다. 요즘은 시어머니가 대놓고 잔소리를 할 수 없어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남자들은 도와주기는커녕 ”대추, 밤이 빠졌다“며 큰소리만 친다. 제사를 준비할 때면 꼭 양반집 후손임을 내세운다. 손 하나 까닥 안 하고 ‘홍동백서’, ‘조율이시’를 들먹이며 예법을 강조한다.

한국학 연구기관 한국국학진흥원이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고조부모나 증조부모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지난 2일 밝혔다. 부모·조부모는 물론 증조부모·고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내면 ‘4대 봉사’(四代奉祀)‘가 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어느 문헌에도 4대 봉사를 제도적으로 명시한 경우가 없다.

1484년 성종 때 편찬된 경국대전(조선시대 법전)에는 ‘6품 이상의 관료는 부모·조부모·증조부모 3대까지 제사를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까지, 벼슬이 없는 서민은 부모 제사만을 지낸다’고 적혀있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제사 지내는 방식까지 법으로 규정해 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일찍 혼례를 올리는 조혼이 일상화되어 고조부모까지 4대가 함께 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고조부모의 얼굴을 기억하는 후손들이 기꺼이 4대 봉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고조부모는 물론 증조부모를 뵙고 자라는 경우도 드물다. 오랫동안 4대 봉사가 집안 전통으로 내려오면서 관습적으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유학의 본산인 성균관은 차례상 간소화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추석 무렵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차례상 준비는 “가족들이 합의해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

차례상에 음식(제물)을 놓는 자리 역시 가족들이 결정하면 된다. 예법을 다룬 옛 문헌에는 애초부터 ‘홍동백서’ ‘조율이시’라는 표현은 없었다고 한다.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 일)로 가족 간에 다툼이 일기도 했다. 괜히 집안 남자들이 들은풍월로 목소리만 높인 것이다.

지난 설 명절 때 성균관이 간소화한 차례상 예시 [그림=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여성들을 고단하게 만드는 지나친 음식 준비, 남자들의 무관심, 까다로운 절차 등이 조상을 기리는 제사상 앞에서 가족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성균관의 혁신 방안에 따라 제사 음식 준비 과정에서의 경제적 부담, 남녀 갈등, 세대 갈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도 할머니, 어머니가 제사-차례 준비로 매년 고생하신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할아버지, 아버지는 큰소리만 치셨다. 집안 여성들의 고단한 모습을 보며 “내가 크면 제사 음식이나 예법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제사는 지내되 음식은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단출한 음식 위주로, 복잡한 의식보다는 조상님들을 진정으로 기리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제삿날에 젊은 자녀들은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께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절을 해왔다. 한자로 가득 찬 지방은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지방 대신 조상님의 얼굴 사진을 모아 놓고 가족사랑이 남달랐던 고인의 생전 모습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추모하는 게 나을 듯싶다. 음식 준비도 전이나 기름진 음식은 아예 제외할 수도 있다.

생전에 가족들을 아꼈던 조상님도 제사 준비로 후손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불화까지 일어나면 큰 실망을 하실 것이다. 평소 자주 보지 못했던 가족-친지들이 모여 고인의 남다른 가족사랑, 생전에 강조하신 말씀 등을 젊은 자녀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도 중요하다. 어느 분 제사인지도 모른 채 절만 하고 음식을 먹던 자녀들이 고인의 사진으로 얼굴을 익히고 훌륭한 성품을 전해 들으며 귀감으로 삼는 날이 바로 제삿날이다.

성균관조차 제사 준비는 ‘가족 간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무턱대고 옛날 방식을 답습하기보다는 각자 집안 형편에 맞게 바꿀 수 있다. 제삿날을 앞두고 스트레스로 화병까지 생겨선 안 된다. 조상을 기리는 뜻 깊은 날이 후손들을 괴롭히는 날이 되어선 곤란하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우리 이제 전 부치지 말자”고 ‘합의’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한다. 제삿날은 조상의 은덕을 되새기고 정성을 다해 공경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날이다. 아울러 가족 간의 사랑을 나누며 인화를 다지는 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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