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도 효과 있을까?

[박창범의 닥터To닥터]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현재 동네의원에서도 치료받을 수 있는 감기,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경증질환 환자가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경우 약제비에 대한 환자본인부담금을 40~50%로 인상하는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경증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을 이용할 때 경제적인 부담을 늘려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도 경증환자에게는 의료질평가지원금과 종별가산율산정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경증환자비율이 높으면 상급종합병원 재지정시 불이익을 주고 있다. 대학병원급 종합병원들도 경증환자비율이 높으면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요청할 때 감점을 받도록 하는 등 병원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실제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들은 단순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당뇨병과 같은 경증환자에게 인근 동네병의원으로 옮길 것을 독촉하고 있다.

이러한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가 실제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첫째, 환자들이 집에서 가깝고 비용도 저렴하고 대기시간도 짧은 동네병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대신 집에서 멀고 비용도 비싸고 대기시간도 긴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동네의원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다.

환자들은 지속적 관리 및 인격적 진료 등을 통해 신뢰를 쌓은 주치의와 같은 동네의사를 원하지만 집 근처 동네병의원 의사는 대부분 특정과 전문의들로서 이런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 전문성도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 비해 떨어진다. 자신의 건강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환자는 동네병의원와 주치의 같은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의료비용이 약간 늘어난다는 이유로 전문적 진료를 위하여 대형병원을 피하지는 않는다.

둘째,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 중 10명 중 8명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은 중증질환에 걸렸을 때 환자의 경제적인 부담을 크게 줄여주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경증질환으로 대학병원급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에도 같은 보장해주기 때문에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는 경제적으로 윤택하거나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의 대형병원이용은 막지 못하고 저소득층 환자들의 이용만 막는 차별적인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

셋째,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급 종합병원들과 같은 의료공급자들에게 경증질환 환자를 받지 않도록 여러 불이익을 주고 있는데 이러한 불이익은 효과가 있을까? 최근에 대형병원들이 경증질환환자 비율을 줄이기 위하여 전문의들이나 교수들에게 경증환자들을 동네병의원으로 돌려보내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환자들이 동네병의원으로 가기를 거부하면서 대형병원들은 여러 꼼수를 개발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환자들의 진단명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진료하면 담당의사는 환자의 진단명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KCD)를 통해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한국표준질병분류는 질병이환 및 사망자료를 그 성질의 유사성에 따라 체계적으로 유형화한 것으로 이 진단명을 통해 의료행위 및 수가를 분류하고 환자의 경증질환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한국표준질병분류에는 유사한 질병명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혈압의 경우 단순고혈압은 I.10이지만 고혈압성 심장병은 I.11인데 단순고혈압의 경우 약제비 본인부담차등제 대상질환이지만 고혈압성 심장병은 대상질환이 아니다. 문제는 어떠한 진단명을 기입할 지 여부는 전적으로 의사가 결정하는데 유사한 진단명 사이에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유사한 진단명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약제사용이나 검사 등에서 건강보험급여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경증환자비율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약제비 본인부담차등제 대상질환이 아닌 유사질환으로 진단명을 변경하는 소위 ‘업 코딩’을 의사들에게 종용하고 있다.

2022년 상급종합병원 경증질환자 의료이용분석 및 효과평가 연구보고서에서 상급종합병원의 경증질환자 외래이용은 2008년 3.0%에서 2019년 1.7%로 감소하였다고 보고하였다. 하지만 이 연구에 따르면 의원의 외래경증질환 환자수도 1.5% 줄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결국 대형병원들이 ‘업 코딩’을 통해 경증질환을 유사한 다른 질병으로 진단명을 바꾸었다고 밖에 설명을 할 수 없다. 이 외에도 경증환자들의 처방일수를 길게 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고혈압이나 고지혈증과 같은 경증질환환자에게 평소에는 90일 처방하던 것을 180일로 처방하게 되면 경증환자비율이 50%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재 대형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많은 교수들이 외래에서 중증질환보다는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환자와 같은 경증질환 약물처방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경증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약제비 10~20%정도 환자가 더 부담하도록 하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경증질환환자의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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