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보낸 '죽음의 무기'... 21만 명 잃은 미국의 대책은?
'펜타닐 전쟁'에도 6년간 급확산... 미국의사협회선 대처법 내놔
수 십년간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온 미국 정부는 '펜타닐'이라는 강력한 합성 마취 진통제로 곤욕을 겪고 있다. 불과 2015년에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마약은 지난 몇 년새 미국 일부 지역과 젊은 층의 생명을 통째로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기 여성 래퍼 ‘갱스터 부’(롤라 미첼), 드라마 ‘워킹데드’의 스핀오프 시리즈에 출연하며 장래를 촉망받던 18살 미소년 배우 타일러 샌더스 등 유명인들까지 펜타닐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다.
미국 내 펜타닐 의심 약물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의도치 않은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 펜타닐을 흡입하고 버린 종이나 지폐를 만지거나 숨겨놓은 펜타닐을 처방약으로 착각해 투약해 사망하는 사례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의사협회(JAMA)는 최근 펜타닐 의심 약물에 대해 미국 보건국이 제공하는 '펜타닐 검사지'를 사용하라고 조언하면서 각종 대처법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펜타닐은 중국이 보낸 '악마의 선물'?
펜타닐의 확산은 중국이 마약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여파라는 지적도 있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50배나 강하면서도 합성 화학성분으로 손쉽게 제조가 가능한데, 그 원료는 사실상 100%를 중국 내 화학기업이 유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적인 국제 유통망도 자리잡았다. 중국에서 제조한 원료를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바닷길로 밀수한 후 완제품으로 만들어 미국의 국경 안으로 들여보낸다. 그간 미국 정부는 중국 당국에 펜타닐 원료 밀수의 원천 차단을 요청했지만, 번번히 양국 관계가 어긋나면서 국제 펜타닐 유통망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펜타닐을 두고 미국 일각에서 '중국이 보낸 악마의 선물', '중국이 꺼내든 죽음의 무기'와 같은 험악한 말을 붙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펜타닐이란
펜타닐은 심각한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치료용 합성 진통마취제다. 아편 원료로 만든 모르핀보다 50∽100배나 강하다. 의사가 처방하는 치료용 의약품일 경우 알약, 로션, 스프레이(코나 혀 밑), 피부 패치, 주사 등으로 투여할 수 있다.
문제는 마약 용도로 만들어진 '의약외품'의 펜타닐이다. 대체로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불법 화학 실험실'에서 만들어진다. 중국에서 공수한 펜타닐 원료에 코카인, 필로폰, 헤로인 등의 마약류를 조금 섞고 '맛을 위해' 여러 종류의 분말과 액체, 또는 위조 처방약도 넣어 만든다. 이는 각 마약 카르텔마다 '제조법(레시피)'이 다르다.
니코틴의 치사량이 40~60mg이라면 펜타닐은 2mg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지난해 말 3억 8000만 회나 투약할 수 있는 양의 펜타닐을 압수한 뒤 “미국인 전체를 숨지게 할 수 있는 양”이라고 밝혔다.
지난 6년간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숨진 미국인은 집계된 것만 21만명가량이다. 미국 시민단체 ‘펜타닐에 반대하는 가족(Families Against Fentanyl)’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자는 2015년 이후 거의 모든 주에서 100% 이상 증가했다. 루이지애나주의 경우 24.6배, 애리조나주는 20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미국 18~49세 사망 원인 1위는 불법 펜타닐 중독이다.
◆펜타닐 유사체란
아세틸펜타닐, 푸라닐펜타닐, 카르펜타닐, U-47700과 같은 펜타닐 유사체는 펜타닐과 유사하지만 동일하지 않은 화학 구조를 갖는 불법 약물이다. 펜타닐 유사체는 특수 독성 테스트가 필요하기에 쉽게 식별되지 않는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펜타닐 유사체인 카르펜타닐은 모르핀보다 약 1만배 강하다.
가장 최근에 알려진 형태는 펜타닐에 동물용 마취제인 자일라진(상품명 럼푼)을 섞은 주사제다. 자일라진은 그 자체론 사람에겐 별다른 효과가 없지만, 펜타닐과 섞었을 땐 오피오이드 계열의 단점인 '짧은 쾌락'을 상쇄한다.
마약 효과가 길고 강해지면서 널락손 투여 등의 응급조치조차 작동하지 정도다. 게다가 자일라진의 부작용인 '피부 궤양'도 더욱 심각해져 투약자들에겐 팔과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의 괴사 사례도 자주 발견된다.
◆펜타닐 과다 복용 증상과 응급 치료
다른 합성 마취진통제와 마찬가지로 펜타닐을 과다 복용하면 동공 수축, 질식. 차갑거나 습한 피부, 의식 상실, 느리거나 약한 호흡 등이 나타난다.
펜타닐 중독 증상을 보였을 경우에는 날록손(naloxone)이란 약물을 빠르게 투약해야 한다. 날록손은 합성 마취진통제의 효과를 빠르게 반전시켜 2~3분 이내에 정상 호흡을 회복하게 한다.
날록손은 적절한 시기에 투여하면 펜타닐 등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을 예방할 수 있다. 비강 스프레이 또는 근육이나 피부에 주사를 통해 투여된다. 약효가 짧은 약이기 때문에 한 번 이상 투여해야 할 수도 있다. 현재 날록손은 미국의 경우 모든 주 지역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 과다복용 예방법
과다복용을 막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불법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치명적인 양의 펜타닐이나 필로폰이 들어있을 수 있기에 소셜미디어나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처방약을 사면 안된다. 환자들은 의사의 감독 없이 펜타닐을 복용해서는 안 된다.
펜타닐 검사지는 펜타닐이 다른 약물(예: 코카인, 필로폰 또는 헤로인)과 결합되었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펜타닐 검사지는 물과 혼합된 불법 약물 샘플에 담그면 5분 이내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양성 반응을 보이는 약물은 즉시 폐기해야 한다. 일부 펜타닐 유사체는 펜타닐 테스트지로 감지되지 않을 수 있다. 펜타닐 테스트지에 대해선 지역 보건부에 문의하면 된다.
◆한국은 펜타닐 청정지대?
한국도 젊은층에서 펜타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마약성 진통제 성분별 처방 현황 자료’에 따르면, 펜타닐의 경우 2018년 89만 1434건에서 2020년 148만 8325건으로 3년간 6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펜타닐의 경우 마약 중독자들이 처방이 쉬운 병원을 찾아다니며 복용하는 실정이다.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펜타닐 패치' 형태로도 출시돼다 보니 10대 이하에서도 꾸준히 처방되고 있고, 20대를 기준으로 보면 2019년 4만 4105건에서 2021년 6만 1087건으로 38.5%가 증가했다.
또 ‘최근 펜타닐 처방 환자 상위 30인 현황 자료’에선 1위 환자의 경우 한 건당 335개의 펜타닐 정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가 2021년부터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 정보망’을 모든 마약류 의약품으로 확대해 시행하고 있지만 적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에선 펜타닐 해독제인 나록손이나 펜타닐 테스트지를 미국처럼 일반인이 구입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