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치매 진행 6개월~1년 늦추는 약 시판 허가
FDA, 엔자이-바이오젠 '레카네맙' 가속 승인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일본의 에자이와 미국의 바이오젠이 함께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사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FDA는 6일(현지시각) 에자이와 바이오젠이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의 판매를 '가속 승인(Accelerated approval)' 했다고 밝혔다. 가속승인은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신약 후보물질이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해 조건부로 시판을 허가하는 것이다.
2주 한 번 정맥주사로 투여되는 레카네맙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축적되는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겨냥하는 ‘단일클론 항체 치료제’로서 지난해 발표된 임상시험 결과 경증 또는 초기 환자의 치매 진행 속도를 6개월~1년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약은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승인된 최초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아두카누맙(상품명 아두헬름)에 이어 치매 환자의 뇌에 쌓이는 단백질 베타 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한 두 번째 의약품이다. 이번 승인은 지난해 말 미국 하원조사보고서가 아두카누맙의 허가 과정에서 이 약 개발을 주도한 바이오젠과 FDA의 유착관계와 약의 비정상적 가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언론의 비난이 들끓는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이뤄줬다. 레카네맙도 임상시험에서 아두카누맙과 마찬가지로 뇌 부기와 출혈 등의 위험성이 제기됐다.
에자이와 바이오젠은 FDA에 가속승인 신청을 하기 전인 지난해 11월 북미, 유럽, 아시아 등 235개 기관에서 초기 알츠하이머병(경도인지장애 또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치매)을 가진 50~90세 중 양전자단층촬영(PET) 또는 뇌척수액검사에서 아밀로이드 축적이 보고된 환자 1795명을 대상으로 18개월 간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임상시험은 환자들을 무작위로 둘로 나눠 한 그룹(898명)에는 레카네맙을, 다른 그룹(897명)에는 가짜약을 투여했다. 레카네맙은 몸무게 1kg 당 10㎎을 2주마다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3개월 마다 변화를 관찰했는데 레카네맙의 투여 효과는 6개월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투여군과 가짜약 투여군 간 증상 진행 속도는 점점 벌어졌으며 결과적으로 18개월간 약을 투여한 환자들의 알츠하이머 증상 진행 속도가 7.5개월 정도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속도가 27% 느려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워싱턴대 의대 조이 스나이더 박사는 "레카네맙이 치매를 완치하는 약은 아니다"면서 "환자가 6개월~1년 더 운전을 할 수도 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환자가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데에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치매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두 제약사는 이번 조건부 승인 과정에서 임상 중 사망한 2명의 원인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하고 심각한 부작용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에자이와 바이오젠은 이 과정을 거쳐 FDA에 정식 승인을 받기 위한 생물의약품 허가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레카네맙이 이 절차를 통과하면 에자이의 경영상 선택이 '신의 한 수'로 평가받게 된다. 에자이는 지난해 3월 '논란의 치료제' 아두카누맙의 계약서를 수정해서 결정 권한을 바이오젠에 넘기는 대신 로얄티만 받기로 했으며, 레카네맙에 대한 계약구조는 그대로 유지했다. 에자이는 2007년 스웨덴의 연구 기반 제약사 바이오아크틱이 개발한 레카네맙에 대해 연구·개발·제조·판매에 대한 글로벌 권리를 확보했으며 2015년 5월 미국 바이오젠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서 공동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세계 제약업계가 레카네맙에 주목하는 것은 글로벌 고령화에 맞물려 치매 치료제 시장이 원체 크기 때문이다. 미국에 본사가 있는 글로벌 여론조사회사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 기준 알츠하이머병 치료 시장은 2022년 42억 달러(약 5조 2920억 원)에서 연평균 16.2% 성장해 2030년에는 156억 달러(약 19조656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일라이릴리의 도마네맙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며, 영국의 타오렉스 테라퓨틱스, 미국 액섬 테라퓨틱스 등도 효능을 입증하고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