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12번 퇴짜... 가는 병원마다 '피해보상 의료감정' 거부
보상 절실한 피해 측만 '안절부절'... '미흡 제도' 정비도 방치
피해보상 소송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의료감정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의료계에서 사안에 따라 '눈치'를 보며 의료감정 발급을 미루는 경우도 있어 판결 절차가 차일피일 미뤄지거나 정당한 보상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사례가 자꾸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한편, 현행 법체계는 소송과정에서 의료감정을 반드시 요구하면서도 관련 발급 체계와 관련해서는 제도 정비가 미흡한 채로 방치하고 있다. 따라서 관련 관행 개선을 위해 의료계와 법조계 양쪽 모두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한 의료사고 피해보상 소송에서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실사례도 나왔다.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60대 A 씨는 통증이 가시지 않아 2020년 12월 수술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법원은 A 씨에게 신체감정을 받으라며 감정 병원을 지정했다. 이 병원은 감정을 거부했다. 법원은 다른 병원을 지정했지만 이 병원 역시 감정을 거부했다. A 씨는 감정을 받기 위해 2년 넘게 병원 12곳을 돌아다녔지만 허탕을 쳤다. 그는 이 추운 겨울에 13번째 병원을 찾아 나서야 한다. A 씨가 신체감정을 받지 않으면 법원은 청구를 기각하게 된다. 일본은 다르다. 법원이 의사 소견과 진단서를 근거로 의료소송에 대해 판단한다.
A 씨처럼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현실을 타개하고자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위원장 최건섭 변호사)는 2일 의료감정과 재판 절차의 공정성 객관성 신속성 확보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변협 인권위는 이 성명에서 “의료감정(진료기록 감정 및 신체감정)은 공정성 및 객관성 문제뿐만 아니라 감정이 지나치게 지연되는 문제점이 심각하다”면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학병원, 종합병원 등 감정기관은 감정 지연 및 거부, 고액 감정료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변협 인권위는 또 “법원은 감정회신의 지연 및 반송 통계를 국민에게 알리고 절차적 신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민사소송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 감정 거부, 고의 지연, 편파 감정에 대한 제제 규정을 마련해 실질적인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인권위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에 대해 “의사 출신 상임감정위원과현직 의사인 비상임감정위원이 의료기관에 편향적인 감정서의 결론을 정해두고 다른 위원을 설득해 비판이 적지 않다”면서 “상임감정위원은 비의료인 출신으로 임용하고 감정부에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해 상임감정위원의 개인적 판단이 개입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대한의사협회에 대해 “의료감정에서 공정성 및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감정인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감정 지연이나 반송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정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 변호사는 의료감정에 대해 “의사들이 다른 의사에게 불리한 감정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일부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감정비만 100만 원을 받아 의료 피해자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