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백병원, 백병원 창립자 '백인제 박사' 기념홀 공개
한국 현대의학의 거두, 백인제 박사 재조명
인제대 서울백병원이 백병원을 창립한 백인제 박사를 기리는 공간을 마련했다. 인제대 백병원이 서울백병원 1층 로비에 조성한 '백인제 박사 기념홀'이다. 서울백병원은 백병원의 역사가 처음 시작했던 백인제외과병원이 있던 자리다.
기념홀에는 백인제 박사의 흉상과 함께 그의 생애와 관련한 영상과 사진 등도 전시해 창립이념인 '인술제세'(仁術濟世·어진 의술로 세상을 구한다)의 뜻을 기렸다.
이번 기념홀 공개와 함께 백병원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돌양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돌양은 1942년 백인제 박사가 신관 증축을 기념해 구해온 기념물로 1994년 서울백병원 하연관(별관)을 착공할 때까지 서울백병원에 있었다. 이후 안성 소재 선산과 인제대를 거쳐 2010년 개원 당시 해운대백병원에 배치됐다. 이번에 서울백병원으로 돌아왔다.
이병두 백중앙의료원 의료원장은 "창립자 백인제 박사가 꿈꿨던 '인술로 세상을 구한다'는 창립이념을 기념홀에 담았다"면서 "의사이자 교육자, 민족주의자인 백인제 박사를 통해 백병원의 시작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기념홀 공개 소감을 밝혔다.
1899년생인 백인제 박사는 1916년 입학한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수석 졸업했다.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임상의학 분야에서 한국인 최초로 경성의전 외과학교실 주임교수가 됐다.
당시 식민 치하에서 백 박사의 의학 여정도 험난했다. 경성의전 재학 3학년 당시 일어났던 3·1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탓에 10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 후 퇴학당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의전 졸업과 동시에 자동 부여되는 의사면허증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2년 동안 마취 일을 전담하면서 외과의사로 대성하는 기반을 다지기도 했다.
이후 백 박사는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을 개원하고 광복 후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1946년 11월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공익법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설립했다. 한국전쟁 당시 납북됐으나, 백인제 박사의 뜻은 백병원과 인제대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