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짐 될까봐.. 중년들의 ‘간병’ 걱정

[김용의 헬스앤]

국가인권위원회가 간병인의 법적 근거 및 관리 체계를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나이 들어 자식에게 부담 안 주고 편안하게 죽고 싶어요”

나이가 들면 ‘편안한’ 죽음을 생각한다. 투병 기간 없이 자다가 그대로 죽고 싶다는 말도 한다. 긴 병치레로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70~80대 노인들 얘기가 아니다. 중년 세대가 벌써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40~60대는 노후의 경제적 안정 뿐만 아니라 ‘건강수명’(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중요시한다. 건강을 잃으면 돈, 재산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들을 고생시키는 병치레를 할까 걱정한다. 중년들은 부모, 시부모 양가 어른들의 간병으로 한창 고민하는 세대다. 본인들이 이미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자식들에겐 ‘간병 대물림’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예전엔 시부모의 대소변을 받아가며 간병한 며느리 얘기가 간혹 ‘미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요양병원이 지역 곳곳에 들어서 집안 간병은 적어지는 추세다. 집안에 치매, 뇌졸중(뇌경색-뇌출혈) 환자가 있으면 온 가족이 비상이다. 뇌졸중(중풍) 후유증이 심하면 몸의 마비, 시야장애 등이 있어 시중들 사람이 필요하다. 직업 간병인을 쓰면 비용도 만만치 않고 성실한 간병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간병은 이제 개인이 오롯이 감당하기 보다는 국가가 직접 개입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먼 훗날의 과제가 아니라 당장 정부의 간병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고령화와 함께 만성질환자가 급속히 늘면서 간병은 국민들의 체감도가 높은 이슈이기 때문이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에 걸맞게 간병 정책도 선진국형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간병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하고 간병 인력의 법적 근거 및 관리체계를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에 지난 6일 권고했다.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다. 간병으로 인한 가족 전체의 삶의 질 저하는 물론 ‘간병 실직’, ’간병 파산‘ 등 생존마저 위협받는 실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가족 등 민간 간병인 중심의 현재의 간병 구조를 법적·제도적 범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인권위는 경제적 능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충분한 간병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정책을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 입원 기간 동안 간호사-간호조무사가 한 팀을 이뤄 보호자나 간병인 대신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제도다. 환자의 안전, 감염관리 등 질 높은 서비스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건강보험 적용으로 간병비가 적게 드는 것도 큰 장점이다.

통합서비스는 2022년 6월 기준 633곳(6만7000여 병상)의 의료기관에서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전체 통합서비스 제공 대상 의료기관의 25.6%에 불과하다. 입원 대기가 길어지면서 중도에 포기하는 등 국민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인권위는 모든 입원 환자가 지역생활권 내에서 간병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전 병동으로 전면 확대하여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간병인의 자격 기준, 인력수급 방안 등도 중요하다. 환자의 시중뿐만 아니라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들인데도 아직 법적 근거, 관리체계가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업무 범위도 명확하지 않다. 전담 간병인의 경우 하루 12만~15만원을 줘야 할 정도로 간병비는 치솟고 있는데 정작 간병인들은 월급이 적다고 하소연이다. 중간에서 소개료를 가져가는 업체가 끼어 있어 환자나 간병인 모두 불만이 높다.

간병인은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교육훈련 없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권위는 간병인의 역할, 자격 기준, 업무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간병인의 자질 향상 및 전문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간병 인력에 대한 교육훈련과 자격제도를 단계적으로 정비하여 제도권 내로 가져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는 요양병원을 포함하여 병원급 의료기관에 입원한 모든 환자가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거주지에서의 의료와 돌봄서비스를 확대하여 요양병원 입원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함께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는 집에서 간병이 힘들기 때문에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환자는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날 “내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지난 3년 간 코로나19 사망자의 절반이 요양병원-시설에서 나왔다. ’현대판 고려장‘이란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는 간호인력 수급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지역간 간호인력 격차도 해소해야 한다. 인권위는 “간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확대되어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사회보장권 및 건강권이 보장되고, 간병 노동자의 노동권이 보호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인권위의 권고를 중시해 간병 문제 해결을 당면 과제로 삼아야 한다. 연금 개혁과 함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가족끼리 서로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것을 마냥 방치할 순 없다. 노년 세대 뿐 아니라 중년들도 “내가 병들어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만큼 실제 체감도가 높고 폭발력이 큰 사안이 간병 문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간병 때문에 마음 조리고 밤잠 못 이루는 가정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의 눈물을 하루빨리 닦아줘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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