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죽음’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박문일의 생명여행] (45)연명의료결정,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

존엄사가 죽음을 앞둔 환자를 대상으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라면, 안락사는 약물 투입 등을 통해 고통을 줄이고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친구의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부인이 최근 몇 개월 동안 암 통증으로 매우 괴로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전해진 이야기로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것이었다. 안락사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에선 안락사를 허용하는 주가 많지는 않다. 그 부인은 안락사의 제반 조건들을 갖추고 장기기증을 하면 안락사를 허용하는 주를 골라 삶을 마감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그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다 안락사와 존엄사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대화로 흘러갔다. 의사인 나도 그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간단히 요약하면 존엄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라면, 안락사는 약물 투입 등을 통해 고통을 줄이고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존엄사는 2018년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해졌다. 법 제정 전부터 존엄사와 안락사의 개념에 대해 사회 각계의 의견들이 일치되지 않았었다. 그 차이점은 개념을 구분조차 간단치 않았다. 가톨릭대 가톨릭생명연구소 이은영 교수가 발표한 논문 내용을 중점으로 설명해 보자(논문 제목: 존엄한 죽음에 관한 철학적 성찰: 연명의료결정법과 안락사, 존엄사를 중심으로: 인격주의 생명윤리 제8권 제2호, 2018).

연명의료결정법은 존엄사법인가, 또는 소극적 안락사로 수용될 수 있는가? 이 법을 제정하면서 국회는 안락사나 존엄사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안락사는 역사적으로 잘못 사용된 사례가 있고(예컨대, 나치의 인종개량정책 등), 존엄사는 죽음을 과도하게 미화할 가능성이 있어 용어 사용에 신중했다. 다수의 대중매체 또는 일부 학계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죽음을 존엄사 또는 소극적 안락사와 혼용하고 있다.

물론 연명의료결정법이 법제화되기 이전에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해 소극적 안락사 또는 존엄사라는 명칭으로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은영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안락사와 존엄사와의 연관성과 차이성을 통해 연명의료결정법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논의했다. 즉, 연명의료 결정과 안락사는 자연적 죽음과 의도된 죽음의 구분 측면에서, 존엄사와는 환자 대상 범위, 선택권-죽을 권리 등의 측면에서 연관성과 차이를 살폈다.

연명의료 결정은 진통제를 투여하고 물과 산소 공급 등은 유지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선택권이라고 결론내렸다. 안락사는 비록 소극적 안락사일지라도 영양과 수분공급 차단과 같은 방법을 통해 죽음을 의도적으로 유발한다는 점에서 연명의료결정법과 구별되는 것이다.

또 존엄사가 지속적인 식물인간 상태에서와 마찬가지로 ‘의식이 없고 인공호흡기에 의해 생명만이 연장되어 있을 때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생명 연장 조치를 중단’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 대상 범주에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범주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그런 면에서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환자라는 조건은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할 수 있는 ‘선택권’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할 수 있는 ‘선택권’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은영 교수는 연명 의료 결정이 종래의 안락사와 존엄사가 어떻게 같으면서도 다른가에 대한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현재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을 올바르게 이해하자고 주장했다.

그동안 많은 토론과 논의를 살펴보면, '안락사'가 고통 없는 생의 마감에 초점을 맞췄다면, '존엄사'는 인간답게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한다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존엄사가 '자연스러운 죽음'에 가까운 반면, 안락사는 '의도적인 '죽음'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어느 나라나 안락사 허용은 쉽지 않다. 프랑스가 '존엄사' 법제화 이후 10년 이상 논의를 거쳐 '안락사'를 도입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위스행 편도 티켓'도 스위스가 안락사를 도입한 몇 안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은 사회 각계에서 '존엄사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안락사' 논의는 아직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이은영 교수의 지적대로라면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적극적 안락사'는 무엇일까. 만약 의식이 있는 환자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 회복 불능의 질병을 앓고 있는데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스스로 선택했다면 그것이 적극적 안락사다. 예를 들면 환자에게 모르핀을 치사량만큼 주사하는 등의 직접적인 행위이다.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를 의료계에서는 각각 수동적 안락사, 능동적 안락사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조력존엄사법’ 제정이 발의돼 안락사가 화두로 떠올랐다. 조력존엄사법 제정을 찬성하는 여론이 무려 82%에 이른다. 세대별 차이도 거의 없는 높은 찬성률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 법의 제정을 일단 반대하고 있다. 이 법을 '의사조력자살법'이라고 표현하면서 의료계가 이런 죽음을 다룰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겁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안락사의 사회적 논의에 앞서 안락사, 존엄사 등 혼재된 용어부터 정립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이 동일한 의료 행위임에도 가치나 관점에 따라 안락사(소극적, 적극적 또는 비자발적, 자발적), 존엄사 등 용어가 달라지면서 혼선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연하고도 마땅한 지적이다. 최근 국회에서도 서영숙, 최재형 의원이 주재한 ‘삶의 존엄한 마무리, 우리의 선택’ 토론회가 개최되어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안락사(安樂死)를 뜻하는 용어 ‘Euthanasia’는 ‘eu(좋음)’와 ‘thanasia(죽음)’가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그 어원은 ευθανασία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어로는 '쉬운 죽음'을 뜻하며, 라틴어로는 '아름다운 꽃'이다. 독일어 ‘Sterbehilife’는 '죽음에 대한 도움'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이 가운데 라틴어 풀이인 '아름다운 꽃'을 선택하고 싶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사라지는 아름다운 죽음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죽음을 과도하게 미화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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