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편리성 앞세운 원격의료, 미국선 이미 '보편의료'

(6)-1 [원격의료, 세계인의 삶 바꾼다] 원격의료의 메카 미국

환자가 노트북으로 의사를 보면서 대화하는 모습(왼쪽)과 환자의 휴대전화에 나타난 진료장면(오른쪽)한국 원격의료 솔루션 업체인 메디히어가 뉴욕에 설립한 닥터히어의 홈페이지 사진 캡처 . [사진=닥터히어]
“발목이 삐었는가 봐요. 붓고 아파요.”
“부은 발목을 보여주세요.”

미국 보스턴에 사는 회사원 김은숙(53)씨는 휴대전화 화상통화 앱인 페이스타임을 이용해 발목을 의사에게 보여줬다.

증상을 자세히 물어보던 의사는 “그 정도면 굳이 병원에 와서 엑스레이를 찍거나 검사할 필요가 없겠다”면서 김 씨가 지정한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냈다.

김 씨는 2013년부터 원격의료를 사용해왔다. 집 부근 하버드 뱅가드(Harvard Vangard)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병원 자체 원격의료 프로그램이 있는 건 아니다. 그가 필요할 때 주치의에게 메일을 보내면 진료 시간을 정해 알려준다. 대개 당일 진료를 할 수 있다. 그는 “원격의료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라며 “검사가 필요하면 병원이 검사기관을 예약해주고 그 결과를 받아서 다시 원격의료를 통해 진료를 하기 때문에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전자건강기록을 병원에 제공했다. 이 때문에 의사는 그의 병력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김 씨도 언제 무엇 때문에 진료를 받고 그 결과가 어떤 지를 휴대전화의 앱만 보면 언제든지 알 수 있다. 손에 자신의 진료기록을 들고 다니는 셈이다.

김 씨의 직장동료 박모 씨는 “(원격의료를 통해서는) 의사를 자주 만날 수 있어 편하다”면서 “직접 병원에 찾아가면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병원을 자주 찾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인 37%가 원격의료 경험 ... 연령 소득 학력 지역별 큰 차이

원격의료는 미국인의 삶, 건강 관리 방식을 바꾸고 있다. 각종 조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10월 CDC(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산하 NCHS(국립건강통계센터)가 발표한 원격의료 현황에 따르면 18세 이상 미국 성인의 37%가 지난해 원격의료를 이용했다. 연령별 이용 경험은 65세 이상자가 43.3%로 가장 높지만 18∼64세도 약 30∼39%로 전 연령층이 고루 이용한 걸로 나타난다. 소득수준을 보면 FPL(연방빈곤수준)의 4배 이상 소득자의 40.7%, 학력별로는 대학 이상 학력자의 43.2%가 이용 경험이 있었다. 미국에서 원격의료는 연령 소득 학력 지역을 넘어서는 보편적 현상이 됐다.

[그래픽=최소연 디자이너]
미국 원격의료의 장점은 ‘빠르고 편하며 싸다’로 요약된다. 미국의 의료 현실을 살펴보면 왜 원격의료가 각광을 받는지 알 수 있다.

미국 공공보험 환자 26일 대기 vs 원격의료는 불과 몇 분

미국에서 병원 예약을 하고 실제 진료를 받는 데 며칠이나 걸릴까? 집 앞에 있는 병원에 예약없이 곧바로 가서 의사를 만날 수 있는 한국에선 이런 질문 자체가 이상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 의료인력 업체인 메리트 호킨스(Merritt Hawkins)는 미국 15개 주요 도시의 진료 대기 시간을 몇 년 간격으로 조사해 발표한다. 올해 조사에 따르면 메디케어(사회보장세를 20년 이상 납부한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에게 연방 정부가 의료비의 50%를 지원하는 공공의료보험) 환자가 병원에 가기 위해 대기해야 하는 시간은 평균 26일이었다. 2017년 조사에선 24.1일이었다. 심장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포틀랜드에서는 최대 49일, 달라스에서는 13일이 걸린다. 메디케어 환자를 아예 받지 않는 병원도 있다. 메디케어 환자를 받는 병원의 비율은 올해 기준 82.4%로 2017년에 비해 4%포인트나 떨어졌다.

자비로 병원에 간다고 해도 곧바로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미리 예약을 하고 하루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원격의료는 사정이 다르다. 모바일 앱이나 PC로 원격의료를 신청하면 3~10분 안에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환자가 편한 시간을 미리 정해 예약해 놓을 수도 있다. 이용자가 의사 명단을 보고 맘에 드는 의사를 고를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SNS) 앱, 음성 또는 화상 전화나 이메일을 통한 원격진료도 이뤄지고 있다. 의사와 통신할 수 있는 수단만 있으면 원격의료가 가능한 셈이다. 원격진료 채널의 종류와 방식은 병원마다 다르다.

[그래픽=최소연 디자이너]
집에서 가장 많이 이용

미국의사협회(AMA)가 지난해 11,12월 이메일과 SNS를 통해 무작위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의사 2232명 가운데 85%가 원격의료를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60%가 높은 수준의 원격의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답했다. 무려 93%가 쌍방향 비디오를 사용했다. 56%는 향후 원격의료의 비중을 높여갈 것이라고 답했다. 스마트폰 카메라, 혈압계, 맥박 산소측정기 등을 사용해 집에 있는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 한다고 답한 비율은 8%였다. 업무만족도가 높아졌다는 비율은 54.2%였다.

80% 이상이 환자의 의료 접근이 쉬워졌다고 봤으며, 62%는 환자가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느꼈다. 응답자의 63%가 원격의료를 이용한 환자의 75%가 기존 환자라고 응답했다. 대부분 원격의료가 보다 나은 종합적인 진료를 가능하게 한다고 봤다. 검사나 수술이 필요한 질병은 병원에서 진료하고 이후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원격의료로 점검할 수 있기에 예전에 비해 종합적인 진료가 가능해졌다는 진단이다.

원격의료 이용 장소는 의사는 병원(80%‧이하 복수 응답), 환자는 집(95%)이 가장 많았지만 의사가 집(64%)에서 진료한 비율도 높았다. 대형병원 의사(15%)도 원격의료를 썼다. 환자는 다른 병원 혹은 멀리 떨어진 곳(11%)에서도 이용했다. 언제 어디서나 진료를 하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들은 병원 근무 이후, 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환자를 돌보기도 한다. 근무 외 시간인 야간에 집에서 원격의료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의사도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병원 조교수이자 비뇨기과의사인 라미 아부트 가이다 박사는 “이젠 대부분 병원이 대면 및 원격 진료를 병행하고 있다”면서 “신체 검사를 제외한다면 원격 의료로도 충분히 환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최소연 디자이너]
싼 가격도 매력…이용자마다 조건에 따라 달라

미국은 의료비가 한국에 비해 매우 비싼 나라다. 보스턴에 사는 박모(29) 씨는 “미국 교포들은 수술이 필요한 병에 걸리면 한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는 게 비행기삯과 체류비 등을 감안하더라 훨씬 싸다”면서 “미국에선 감기에 걸렸거나 설사나 나더라도 병원비가 비싸기 때문에 슈퍼에서 약 한 알 사서 먹고 버틴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업체는 이 비용을 크게 낮췄다.

미국 원격의료업체 시장점유율이 70% 이상인 텔라닥(Teladoc)은 무조건 진료당 49달러(약 6만4000원)를 받는다. 환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가입한 보험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애트나(Aetna) 보험의 환자들은 38달러(약 4만9000원) 이하를 낸다. 텔라닥과 파트너쉽을 체결한 베스 이스라엘 병원(Beth Israel Medical Center)은 가족 회원(최대 9명)의 경우 매년 49.99달러(약 6만5000원)를 내면 진료당 39달러(약 5만1000원)를 내면 된다. 또 한 달 또는 일 년에 일정액을 내면 개인의 추가 부담 없이 무제한 진료를 하는 병원도 생기고 있다.

 

김은숙 씨가 12일 미국 보스턴 사무실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원격의료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하준우 기자]
한국보다 긴 진료시간 …꼼꼼한 환자 정보 제공

진료시간은 제한이 없다. 가이다 박사는 “원격의료를 할 때 환자 한 명당 25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김 씨는 “원격진료를 하면 약 20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면 진료를 해도 시간은 비슷하다.

이는 한국과 비교할 때 꽤 긴 시간이다. 한국 의사의 평균 외래 진찰시간은 초진은 11.81분, 재진은 6.43분이다. 의사 1인당 일주일 동안의 진료환자 수는 초진 평균 39.70명, 재진 평균 125.25명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선 의사가 전자건강기록(HER:Electronic Health Records)을 보면서 진료한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건강정보기술법(Health Information Technology for Economic and Clinical Health Act.)에 따라 상당수 의원들이 환자의 개인 병력을 보면서 진료를 하고 있다. 환자 개인의 이야기에 의존해 진료하는 한국 의사와 딴판이다. 전자건강기록은 일부 한국 대형병원들이 구축하고 있으니 해당 병원만의 기록일 뿐이다. 이 때문에 원격의료로 환자를 처음 보더라도 의사가 환자의 병력을 모두 알고 진료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

미국 의사들은 진료를 마친 뒤 의료기록을 정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쓴다. 원격의료 업체는 이 시간을 줄였다. 진료를 보면서 곧바로 필요한 사항을 PC에 입력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정말 미국 원격의료에 만족하고 있을까. 텔라닥에 대한 미국 소비자만족도 조사인 J.D. Power의 2021년 점수는 1000점 만점에 874점에서 높은 편이었다. 이는 텔라닥 자체 만족도 조사와 거의 일치한다. 회원 90% 이상이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대한 사용자의 평판을 조사하는 사이트 ‘캡테라(Capterra)’의 텔라닥에 평점은 5점 만점에 2.6점이다. 사용편의성은 2.9점, 고객 서비스는 2.3점으로 다소 낮다. 아부트 박사는 원격의료에 대한 문제점으로 ‘연결성’을 꼽았다. 통신상의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의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는 “원격 진료가 오진 등 법적 문제에 휩싸일 수도 있어 원격의료를 꺼리는 의사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하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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