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생명 건 손흥민과 크로아 ‘마스크맨’ 비교하다니…
의사들 “아직 안심 단계 아니고 복시 조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토트넘 핫스퍼)이 선수생명을 걸고 월드컵에서 이를 악물고 뛰었다는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극소수 악플러들은 “크로아티아 수비수는 마스크를 쓰고 뛰어 브라질 전 승리를 이끌었고, 벨기에의 케빈 드 브라이너는 수술 3주 뒤 마스크도 안 쓰고 뛰었다”며 태극호 주장의 분투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상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전문가들은 “앞뒤 모르는 째마리들의 막가파식 주장”이라며 “손흥민과 다른 ‘마스크 맨’들은 부상의 차원이 다르며 손흥민은 지금도 안심하지 못한다”며 대표팀 캡틴의 무사 회복을 기원했다.
손흥민은 지난 11월 2일 유럽 챔피언스 리그 마르세유와의 경기에서 눈을 둘러싸고 있는 안와(眼窩·눈확)와 광대뼈 등 얼굴뼈 4군데가 부러졌다. 김석화 분당차병원 성형외과 교수(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TV 경기 화면을 보니 코피가 나면서 눈 주위가 내려앉아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코메디닷컴 기자들이 취재한 모든 의사는 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냈다. 의학적으로 안와골절 수술 4~8주까지 중강도 이상의 운동을 금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손흥민은 전쟁 같은 경기를 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의 팀 닥터도 절대 월드컵 경기에 나서면 안 된다고 진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이란 염원을 가슴에 담고 경기에 나섰다. 마약성 진통제나 강한 약을 먹어야 할 시기였지만 도핑 걱정에 약한 진통제를 먹고 뛰었다. 3차전 포르투갈 전에서는 70m를 질주하고 황희찬의 역전골을 절묘하게 어시스트, 16강의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경기 막판에는 마스크를 벗고 뛰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의학계에서는 손흥민은 아직 조심해야 할 시기이며, 당분간 토트넘의 경기에도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안와수술의 가장 큰 부작용은 복시(複視). 지금까지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안심할 수 없으며, 눈 주위는 여러 조직이 있기 때문에 충격 탓에 나중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수원삼성의 ‘푸른 장벽’으로 불렸던 수비수 조성진. 그는 2015년 상대편 골키퍼와 부딪혀 안와가 골절됐고 수술 후 한참 뒤인 2019년 뒤늦게 복시가 와서 공중 볼 처리 과정에서 실수가 되풀이됐다. 미국에서 제작한 맞춤 고글을 쓰면서 몸부림을 쳤지만 결국 공이 두 개로 보이는 상황을 떨치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으며 축구화를 벗어야만 했다.
일부에서는 크로아티아의 ‘마스크 맨’인 센터백 요슈코 그바르디올은 마스크를 쓰고도 잘만 뛴다면서 손흥민과 비교하는데 의학적으로 비교 대상이 안된다. 그는 지난달 11일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동료와 부딪혀 코뼈에 금이 가고 눈 주위도 부어올랐지만 수술까지 가지 않고 회복한 뒤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부상이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뛰는 상태와 선수 생명을 걸고 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바르디올의 부상은 2002년 월드컵 때 코뼈가 부러져 마스크를 쓰고 뛴 수비수 김태영의 부상보다도 훨씬 가벼운 상태이다.
‘맨시티의 지휘자’ 케빈 드 브라이너는 지난해 5월 30일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와 충돌해 왼쪽 눈확이 골절돼 수술을 받았다. 그는 다음 달 12일 유로2000 조별예선 1차 경기인 러시아 원정에서는 결장했지만 17일 덴마크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1골 1도움으로 팀 역전승을 이끌었으며 21일 핀란드전에서는 1도움을 올리며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그러나 당시 유럽의 언론에선 부상 부위가 심각하지 않아 작은 수술(Small operation)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벨기에 대표팀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은 “불행 중 다행으로 부상이 아주 심각하지는 않으며 얼굴 마스크 없이도 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마스크를 벗고 뛰었다. 병명만 같을 뿐, 부상 정도가 중증인 손흥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이 밖에 이번 월드컵에서는 튀니지 미드필더 엘리에스 스키리(쾰른), 벨기에 미드필드 토마 뫼니르(도르토문트), 일본 수비수 다니구치 쇼고(가와사키 프론탈레) 등이 광대뼈 부상으로 마스크를 쓰고 뛰었지만 손흥민의 부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의학자와 스포츠 전문가들은 수많은 명문 팀 월클 선수들이 손흥민이 쓰러지면 다가와서 살펴본 것은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접을 수 있는, 프로선수의 운명을 동변상련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손흥민은 지금부터라도 뼈와 조직이 완전히 아물 때까지 충격을 조심하고 시력에도 신경 써야 한다. 월드컵 대표팀의 팀 닥터인 왕준호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경기에 나서겠다는 손흥민을 말릴 수 없는 상황에서 무사히 경기를 마친 곳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앞으로 꼭 정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기를 바란다”고 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