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가 길일에 제왕절개술 안해준다면…

[박문일의 생명여행] (42)출산과 사주·길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 제가 원하는 날에 아기를 낳을 수 있나요?”
“네? 자연분만에서는 진통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기 때문에 어렵지요.”
“제왕절개술을 하면 되나요?”
“자연분만이 가능한데, 원하는 날에 아기를 낳기 위해서 수술을 하신다고요?”
“네, 이왕이면 아기 나오는 시간까지 맞추고 싶어서요.”
“....”

아직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부인과 진료실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다.

물론 일부 임신부의 이야기이지만, 사주를 본 뒤 분만일을 골라 태어날 아기의 사주팔자(四柱八字)를 자신들이 원하는 때에 맞추겠다는 부부가 있다. 사주팔자란 사주의 간지(干支)가 되는 여덟 글자. 예를 들어, ‘갑자년, 무진월, 임오일, 갑인시’에 태어난 경우, ‘갑자, 무진, 임오, 갑인’의 여덟 글자를 말한다. 태어나는 시간까지 맞추려면 산부인과 의사는 일요일 새벽이라도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한다.

대학병원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만, 여성전문병원을 비롯한 산부인과 현장에서는 이런 부모들의 요청을 쉽게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사주에 따른 제왕절개수술을 못해준다고 하면 다른 병원으로 쉽게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진료를 해 온 산부인과 의사가 자신 및 태아의 건강 상태를 가장 잘 아는데 임신부가 아기의 사주 때문에 초면의 의사를 찾아가는 예가 빈번하다.

하루는 진료실에서 어떤 임신부가 “선생님, 어느 계절에 아기를 낳는 것이 아기에게 좋은가요?”라고 묻는다. 여름철에 아기 낳으면 임신부가 산후조리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자신이 아닌 태아의 건강에 대하여 묻는 임신부는 상당이 드물다. 당시 제대로 답변을 못해주었었는데 그 뒤 계절에 따라 태어나는 아기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관련 논문들을 찾아보니 2015년에 발표된 논문이 있었다. 그 내용을 아래에 소개해 보려 한다.

미국 뉴욕시 컬럼비아대 의대의 타토네티(Nicholas P Tatonetti) 교수팀은 《미국의학정보학회지(JAMIA, J Am Med Inform Assoc.)》 2015년 9월호에 발표한 ‘태어난 월이 일생의 질환에 영향을 미친다(Birth month affects lifetime disease risk)’는 논문이다. 연구진은 1900~2000년 뉴욕에서 태어난 기록이 있는 175만여명을 추적하였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3월, 즉 겨울에 태어나면 고혈압 등 심혈관질환이 많았다. 3-5월의 봄에 태어나면 조현병, 우울증 등이 많았다. 4월생은 협심증 및 만성심근허혈증이 많았다. 9월생은 천식환자가 많았고 10월생은 호흡기 감염이 많았다. 즉 가을은 호흡기질환의 계절이다. 11월생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가 많았다. 그리고 12월에는 타박상이 많았다. 또한 가을(10~12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봄(4~6월)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았다.

계절에 따른 분만결과에 따라 특정 질환이 잘 발생한다는 위 연구의 내용을 인용하면, 해당 질환을 피하려면 해당 월의 분만을 피해야한다. 물론 위 연구의 전체 연구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연구결과를 뒷받침하는 후속연구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 지역이 북반구라면 남반구에 사는 사람들의 질병패턴과 같을 수도 없다는 것도 연구의 제한점이다. 위도별로 기후가 다른 지구의 여러 환경을 제대로 반영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해당 월이나 계절에 잘 발생한다는 특정 질환을 피하다보면 다른 월이나 계절에 잘 발생하는 또 다른 여러가지 질환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 연구의 내용 중에는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끄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5~9월에 태어난 여성의 자녀 출생률 감소가 관찰됐던 것이다. 그 배경으로는 여성의 생식 기관은 남성과 달리 일생 동안 가질 수 있는 일정한 수의 난자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러한 난모세포 수는 분명히 향후 자신의 생식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일부 다른 연구에서도 산모의 출생 월과 자손 수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 태아 및 초기의 생식환경 발달 영향이 여성의 평생 생식력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잘 디자인된 더욱 많은 논문들이 이 결과를 뒷받침해주어야 하겠지만, 일단 이 분야의 후속 연구결과들을 흥미있게 기다려 볼 예정이다. 그 연구결과가 난임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저출산으로 신음하는 우리나라에 앞으로 저출산 극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크기 때문이다.

비록 후속연구가 많지는 않으나, 현재까지 위 연구결과를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논문들은 아직 없으니 일단 흥미로운 결과로 생각해 두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적어도 사주보다는 과학적 근거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불려왔던 금수저, 흙수저 등이 아니고 이젠 봄수저, 가을수저 등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향후 태어날 아기의 사주를 미리 결정하고 출생일을 조정하겠다는 것에 대하여 필자는 절대 반대한다. 사주를 설명하는 명리학(命理學)은 하늘이 내린 목숨과 자연의 이치 확립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학문적 제도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과학과 미신’ 사이에서 명확한 정체성을 요구받고 있다.

김성덕 동방문화대학원 교수의 연구결과가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그는 명리의 이론 체계인 음양오행과 사주팔자 추론 방법을 과학적 설명 방식인 과학적 인과 이론과 확률적 인과 이론으로 접근하였는데, 그 결과, 명리의 음양오행은 자연과학적 인과 관계가 아닌 철학적 인과 관계로 규명되었다. 또한 명리의 사주팔자 추론 방법도 확률적 인과 이론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약한 규칙성’마저 성립되지 않아 과학성이 입증되지 못했다고 했다. 중국철학사에서도 음양오행과 사주팔자는 한나라 때 여성들을 흉노족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정립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사주는 과학적 근거가 전무하다. 이를 고집하는 일부 부모들 또는 임신부들 때문에 애꿎게 우리나라 분만통계에서 제왕절개술 비율만 상승하고 있다. 임산부와 아기의 안전, 건강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주치의와 환자의 신뢰를 해치는, 이 미신의 문화는 언제 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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