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의의 과실과 집도의의 법적 책임

[서상수의 의료&법]

집도와 마취가 분업 내지 협업관계를 이루게 된 것은 환자에게 보다 나은 진료를 제공하기 위한 효율적이고도 상당한 방법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환자 A는 전신마취를 하고 우측 난소 낭종 제거수술을 받았다. A는 수술 직후 회복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보호자의 말에도 전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신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만 살짝 떴다가 감았을 뿐이다. 회복실에 도착해 침상을 옮기는 과정에서도 목이 힘없이 아래로 축 처져서 의식이 없어 보였고 간호사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A는 긴급하게 산소 주입을 받고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으나 호흡곤란이 발생하여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으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졌고 결국 뇌손상으로 인한 혼수, 폐렴 및 이로 인한 심폐기능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A에 대한 부검감정 결과 수술 후 자발호흡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호흡보조기가 제거되어 저산소증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 사고에서 마취의와 집도의 및 병원장의 법적 책임은 어떻게 보는 것이 타당할까?

형사책임에 대해 마취의는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인정되나 유족들과 합의하고 고소를 취소하는 형사조정이 성립되어 기소유예의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우측 난소 낭종 제거 수술을 집도한 집도의에 대해서는 마취와 수술 사이의 상호독립성 내지 신뢰의 원칙에 근거하여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민사책임에 대해 마취의와 병원 운영자인 병원장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었음은 물론이고 집도의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었다.

대구지방법원은 집도의의 형사책임은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더라도 민사책임의 영역에서는 마취와 수술의 관계는 부득이하게 수반되는 의료행위로서 일체성이 강하고, 수술 등의 진료행위에는 마취행위가 포함되어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마취의는 집도의 내지 주치의의 이행보조자 지위에 있다고 보고 수술에 수반된 마취의의 과실에 대해 집도의는 환자에 대한 진료계약상의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대구지방법원 2022. 4. 12. 선고 2020가단119445 판결).

임상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마취에 관하여는 마취의가 집도의보다 훨씬 더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상호 협진은 필수적이지만 집도의가 마취의를 지휘 감독하는 관계에 있을 수는 없는 것이며, 집도와 마취가 분업 내지 협업관계를 이루게 된 것은 환자에게 보다 나은 진료를 제공하기 위한 효율적이고도 상당한 방법이다.

진료계약은 의료행위의 고도의 전문성으로 인하여 환자 측이 의료기관에 생명과 신체에 대한 처치를 위임하는 고도의 신뢰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환자 측에 대한 민사책임에 있어서는 의료기관 내부적인 분업관계가 면책의 구실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집도의도 마취의 및 병원장과 연대하여 환자 측에 대한 손해배상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판결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집도의의 민사책임에 대한 구제는 집도의와 마취의 및 병원장의 내부적 구상관계를 통하여 해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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