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을 어떻게.. 말기 환자의 눈물
[김용의 헬스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환자들은 잠에서 깰 때마다 ‘죽음’을 직감한다. 말기 암 환자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적극적인 치료에도 회복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몇 개월 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이다. 요즘은 의료진이 가족과 상의해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건강 상태를 미리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임종이 다가온 환자들에게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한때 환자에게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의료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선 이를 연구한 논문도 나오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올 수 있다. 말기 환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병세가 급변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가족과의 추억을 되새기고 사랑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어 한다. 재산 문제 등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임종 장소도 환자의 의지대로 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사람 4명 중 3명은 병원 안에서 죽음을 맞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사망자의 75.6%는 요양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에서 사망했다. 주택에서 사망한 비율은 15.6%였다. 병의원, 요양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07년에는 의료기관 60%, 주택 26.0%였다. 이 같은 추세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거동이 힘들 정도로 아프면 요양병원-시설로 가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정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터 같은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준비한다. 일기로 하루 하루를 기록하고 가족에게 당부사항을 정리하기도 한다. 이제 몇 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 그들에겐 천금과 같다. 지금까지 보낸 수십 년 세월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다. 건강한 사람은 이 귀중한 시간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마지막까지 SNS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전하는 경우도 있다. 가수 고 김철민은 폐암 투병 중에도 활발한 SNS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가수 보아 오빠인 고 권순욱 광고 감독도 복막암과 싸우면서 SNS로 본인의 치료 경과를 알리기도 했다. 이제 고인이 된 두 분 모두 투병 의지가 대단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놀라운 의지로 SNS에 글을 올렸다. 건강한 사람도 작성하기 힘든 글을 사력을 다해 써서 자신의 심경을 알렸다.
생을 정리하는 환자들에게는 건강할 때는 하찮았던 것들이 매우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가족, 지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갈등이 있었던 사람과는 화해를 시도한다. 죽기 전에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건강할 때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겐 이제 시간이 없다. 죽음과 마주하면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길이 없다.
코로나19 유행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집으로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병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가족들은 요양병원 측의 ‘위독’ 연락을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차를 몰다 임종 통보를 들은 사례도 있다. 이제는 매일 보도되는 코로나 사망자 숫자에도 무신경해지는 경우도 있다.
건강한 사람은 ‘죽음’을 체감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른다. 여생이 얼마 안 남은 환자와 다툼이 있었다면 먼저 다가가서 사과하고 화해해야 한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면 닦아줘야 한다. 후회되는 일이 있으면 표현하고 고마움과 애정이 담긴 말을 건네 보자. 오늘도 친구 부모님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상투적인 문구를 카톡에 적어 보낸다. 내가 삶이 얼마 안 남은 말기환자라면 지인의 사망 소식에 어떻게 반응할까?
고 권순욱 감독은 SNS에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의사들은 왜 그리 싸늘한가요?”라고 쓰기도 했다. ‘싸늘’이란 단어는 권 감독의 주관적인 표현이다. 싸늘하지 않고 따뜻한 의사들도 많다. 다만 그는 고통스런 암 투병 못지않게 주변의 말 한 마디에 깊은 생채기를 입은 것 같다. 내 가족,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천금과도 같다. 부모님이 요양병원에 계시다면 자주 면회를 가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자. ‘사랑’과 ‘고마움’은 곧 세상을 떠날 사람들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