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삶의 파괴자] "피해자 정신적 고통, 상상 그 이상"
일상의 모든 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스토킹을 당하는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 환자들의 고통에 육박한다."
코메디닷컴은 스토킹 범죄가 피해자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를 듣기 위해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신상호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현병과 우울장애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신 교수는 "스토킹은 피해자들의 삶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끔찍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인간의 정신 건강에 있어서 '공기'와 같은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뒤틀어버리는 탓이다.
'원하지 않는 호의, 거부하는 권리' 인정해야
신 교수는 "스토킹 범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강도와 빈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라며 "스토킹으로 인한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초기의 관계 단절이 가장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며칠 동안 이어졌던 관심과 집착이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개월, 몇 년 정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한 통의 이메일로 시작된 집착과 관심이 거주지 침입과 폭행 및 살해 등 극단적인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상대방의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집착을 일삼는 스토킹 범죄는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면서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잠재돼 있던 (가해자의) 성격적 특성이 더욱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인간관계의 방식을 포함한 성격적 문제로부터 기반될 수 있기에 다시 되돌리거나 고칠 수 있는 성질의 범죄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 때문에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스토킹 범죄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신 교수는 "지금 당장 나타나는 행태가 사소한 것이라도 이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면서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경향이 점차 강화될 수 있으며 결국에는 극단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능하면 이른 시일 내에 관계를 단절하는 경우에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절실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와 같은 사회적 통념은 스토킹이 극단적 범죄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다.
"좋아하는 데 받아주지 않으니 폭력적으로 대응한 것 같다"는 이상훈 서울시 의원 발언이 경악할 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 초기에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고 받아주면 더욱 강도가 높아지고 폭력적 행동을 동반한 범죄로 발전할 위험성이 크다.
보통 인간관계에서 직접적인 거절이 쉽지 않다. 때문에 상대방이 받는 상처를 고려해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자들은 '중의적인' 혹은 '완곡한' 거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무의식적으로 그 의미를 전달 받았다고 해도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식적으로 인정을 못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
스토킹 대응 방식에서 명백하고 단호한 거절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호의로 포장된 '집착'을 거부하는 것은 마치 "강매하는 물건을 사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거절이 ‘매정한’ 행위가 아니라 당연한 행동 및 대응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뜻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집 앞에서 기다리거나, 연락 공세를 이어가는 등의 행동에 '순정'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악몽으로…. "약한 자신을 스스로 공격하며 자책하기도"
신당역 사건의 피해자는 살해당했다.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대부분 스토킹 피해자들의 삶은 송두리째 망가지는 피해를 입는다.
신 교수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의 수치는 신체적 고통으로 1차 진료 기관을 찾는 이들이 겪는 고통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정신질환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들이 겪는 고통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스토킹을 당하는 이들은 우울, 불안, 불면 집중력 저하 등 여러 가지 정신과적 질환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킹 범죄가 피해자들의 정신 건강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원인은 가해자의 특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스토킹 범죄의 80%가 아는 사람을 통해 이뤄지는데, 어느 정도 친밀한 관계를 구축했던 이들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정신적 충격이 더욱 심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전혀 모르는 사람 보다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 돌변해서 나를 폭행하거나 목숨을 위협하는 경우에 피해자가 받는 충격은 상당하다"면서 " 때문에 피해자들이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PTSD)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토킹 피해는) 이후 모든 사회적 관계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게 될 수 있다"면서 "숨을 쉬는 공기가 조금만 오염돼도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이, (피해자에게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이들이 겉모습과 다른 모습이 숨겨져 있지 않을 까 하는 의심과 불안, 두려움의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스토킹 범죄가 인간 정신 건강의 필수 요소인 건강한 사회 관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정상적으로 맺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매 순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스토킹 범죄의 폐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가 자신을 스스로 벌하면서 자책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신 교수는 "피해자들의 경우 자신이 스토커들로부터의 공격을 물리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 (자신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자책을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벌하는 기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자기 주변의 일이 통제되지 않으면 오히려 공격의 화살을 가장 약한 존재에게 돌리게 된다. 그리고 그 가장 약한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고 설명했다.
스토킹이 장기간 지속할 경우 이런 심리적인 기제는 강화될 수 있다. 학교 폭력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이들도 이 피해를 막아내지 못하면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서 자기를 비하하고 자책하는 때도 있다.
"빠른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망설이지 말아야"
스토킹 범죄는 장기화할수록 가해자의 범행 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피해자의 정신 건강도 빠르게 무너진다. 때문에 신 교수는 스토킹 범죄를 당하면 피해자가 자신의 정신 건강 및 심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지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들과 제도가 있지만, 이들 기관에 연락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라면서 "자신이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지 여부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며, 정신적 고통이 심해지는 시기에는 빠른 시간 내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정서적 지지는 물론 신체적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상담 치료와 약물 처방을 비롯한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스토킹 범죄의 피해를 당하면 정서적, 신체적 무력감이 나타날 수 있는 데, 이런 상태가 지속할 경우 가해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여러 대응들, 가량 주소지 이전이나 법적 조치 등 적극적인 방법을 찾을 힘조차 갖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응급 상황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등을 찾아 두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두근거림 등의 신체 증상 뿐 아니라 우울, 불안, 분노, 두려움 등을 낮추고 자신의 상황을 검토할 수 있는 정서적 안정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 돼야 한다.
신 교수는 또한 의료계에서 스토킹에 관한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사회적 인식에 대한 제고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갑질'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인식이 바뀐 대표적인 행위 중 하나다"고 예를 들었다.
직장 내 갑질에 대해 예전에는 피해자가 견뎌야 하는 쪽이라는 인식이 많았지만, 이게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내는 지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심지어 갑질은 경제적 측면에서 회사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갑질'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은 높아졌고 많은 이들이 이 행위에 대해 조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질 경우,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접근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도 높아질 수 있다"면서 "구애 행위에 대해서 상대방이 명백한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상대방의 의사 존중하지 않고 그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한번이라도 사회적 비난이나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의식이 보다 확산한다면 이번과 같은 끔찍한 범죄를 예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편집자 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범인 전주환에게 징역 9년이 선고됐다. 불법 촬영과 스토킹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의 결과다. 이번 살인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법적 절차에 따라 여러 조처했음에도 결국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근절되지 않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적 분노도 커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스토킹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의 단절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언론에서 스토킹 범죄의 잔혹성이나 피해 현황 등을 자세히 보도하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살인이나 폭력과 같은 극단적 형태의 가해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가해가 피해자들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 규제 강화도 필요하지만, 스토킹을 단순한 집착이나 과다한 애정 표현이라는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우선되지 않고서는 범죄 예방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스토킹의 경우 초기 징후 발견과 이에 대한 단호한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 호의나 연락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코메디닷컴은 정신 건강 전문가와 스토킹 범죄 피해자 심리 상담가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스토킹 범죄가 피해자들의 정신 건강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들어보았다. 동시에 나날이 심각해지는 스토킹 범죄를 예방하려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2회에 나눠서 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