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차례, 여행... "가족 합의 중요"
제사 주체, 균분 상속 등 남녀 차별 없어.. 조선 후기에 변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간의 합의’입니다.”
5일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한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 최영갑 위원장은 “명절만 되면 ‘명절 증후군’과 ‘남녀 차별’이란 말이 나오고 심지어 ‘이혼율 증가’가 등자하기도 했다”며 “유교는 국민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현대화 과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이날 위원회는 파격적인 ‘차례상 표준안’을 내놓았다. 시연 차례상에는 과일 4종류와 3색 나물, 고기구이, 물김치, 송편, 술 등 6가지만 차례상에 올랐다. 여성들을 힘들게 했던 ‘전’은 없었다. 위원회는 6가지를 기본으로 “육류, 생선, 떡을 추가할 수 있다”고 했다. 구이 대신 생선 등 다른 음식을 올릴 수도 있다.
성균관 측은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 간의 합의’라고 강조했다. 성묘와 차례 중 무엇을 먼저 할 것인지, 과일의 가짓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차례상의 음식 위치는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을 ‘가족 간의 합의’로 정하면 된다고 했다. 명절 때 국내외로 여행 가서 차례를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조상을 기리는 정성이 담긴 의식인 차례를 놓고 가족 간의 불화나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조선 시대의 재산 상속 문서인 '권심처손씨분금문기'(15세기-보물 549호)에 따르면 차례, 제사를 지내는 주체는 아들, 딸 구분이 없었다. 똑같이 돌아가며 지냈다. 조선 중기까지는 남자와 여자, 형과 아우를 구분하지 않았고 골고루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 이를 ‘균분상속’이라는 용어로 적었다.
조선시대 법전 ‘경국대전’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딸, 아들 구별 없이 재산을 동등하게 상속했다. 제사를 지내는 자손에게 1/5을 더 주고, 여자가 친정에서 가져 온 재산은 처분권도 전적으로 여자에게 있었다. 부부의 재산은 통합하지 않고 구분해 놓았다. 가정 내 재산과 차례 등 의례는 남녀 차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차등상속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성리학 중심의 유교체제가 사회 전반에 자리를 잡으면서 조상제사를 더욱 중요시 했고 주체도 딸, 아들을 구분해 맏아들 중심이 됐다. 이에 따라 재산상속도 맏아들 위주로 바뀌었다.
시대가 변하면 의례도 바뀌기 마련이다. ‘가족 간의 합의’가 있으면 차례상에 고인이 좋아했던 튀긴 치킨이나 라면도 올릴 수 있다. 칼로리가 많아 늘 고민인 전을 부치지 않을 수도 있다. 교통체증을 불러왔던 성묘도 몇 주 전 미리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조상을 진심으로 기리는 마음이다. 어려운 한자로 된 지방 대신 돌아가신 조부모의 사진을 차례상에 올리면 어린 손자들이 기억하기 좋을 것이다.
‘허례허식’이란 마음이나 정성이 없이 겉으로만 번드르르하게 꾸미는 것이다. 차례상에 수십 가지의 음식(제물)을 올리더라도 진심으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옅으면 의미가 없다. 차례상을 놓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불화, 남녀 차별 등 갈등이 불거지면 조상님들 볼 낯이 없다. 차례상 하나만 바꿔도 가족들이 화목해진다면 그 길을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