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는 없다..생명 살리려 먼저 할 일은?

[박문일의 생명여행] (31)필수의료 정의와 법 제정의 필요성

제도적으로 필수의료, 공공의료, 응급의료 영역의 범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필수의료가 요즘 핫 이슈가 되고 있다. 국대 최대 종합병원의 간호사가 병원 근무중 뇌출혈 응급상황에 처했는데도 결국은 사망한 까닭이다. 이런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우리나라 필수의료 제도의 개선을 위한 여러가지 논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해결책이 마련되기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필자는 필수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그동안 특히 출산과 관련된 모성, 태아보호에 대한 필수의료제도의 정착에 대하여 여러가지 제안을 한 바 있다. 이러한 제안은 필자뿐 아니라 사실 20여년 전부터 대한의사협회, 대한산부인과학회, 산부인과 의사회 등을 통하여 꾸준하게  정부 측에 전달되어 왔지만, 아직도 그 개선책이 미미하다는 것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제도적으로 필수의료, 공공의료, 응급의료 영역의 범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은 까닭이 크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약칭: 공공보건의료법)을 보면 ‘공공보건의료’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해당 법률 제 7조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의무에 대해 적고 있는데, 여기에 ‘필수의료’로 간주될 수 있는 사항들이 적시돼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공보건의료기관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보건의료를 우선적으로 제공하여야 한다<개정 2016. 2. 3.>. 1. 의료급여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2. 아동과 모성, 장애인, 정신질환, 응급진료 등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 3. 재난 및 감염병 등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공공보건의료 4.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관련된 보건의료 5. 교육ㆍ훈련 및 인력 지원을 통한 지역적 균형을 확보하기 위한 보건의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위 내용에 ‘필수의료’란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만 있을뿐이다. 그러니 일단 우리나라 ‘필수의료’ 영역은 공공보건의료 법률에 의해 두루뭉수리하게 지배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약칭 응급의료법)도 있다. 법률 내용을 보면 ‘응급의료’란 응급환자가 발생한 때부터 생명의 위험에서 회복되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위해가 제거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응급환자를 위하여 하는 상담ㆍ구조(救助)ㆍ이송ㆍ응급처치 및 진료 등의 조치를 말한다고 돼 있다. 또한 ‘응급환자’는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하여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으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필수의료’에 대한 법률도 있을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우리나라 의료법을 보아도 아직 필수의료 라는 단어가 담긴 법률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만 의료법에 보면 종합병원의 구성요건에 ‘필수진료과목’이라는 용어가 있으며 여기에 해당되는 임상과목은 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로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정리해 보면, 현상황에 있어서의 필수의료란 공공보건의료 영역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응급의료를 다루는 진료과목으로 해석되어도 무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수의료가 정확히 법률로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혼란만 야기할 것이다.

아무튼 최근 발생한 간호사 뇌출혈사망사건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질환의 응급수술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의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  따라서 최근 국회에서 필수의료과 전공의에 대한 국가의 행정·재정적 지원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추진 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신현영 의원이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최근 상황을 살펴보면, 필수진료과목에 대한 전공의 지원율은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에 101%를 기록했던 소아청소년과는 올해 28.1%로 떨어졌으며 흉부외과는 47.9%, 외과는 76.1%, 산부인과는 80.4%로 저조하다. 최근 5년 필수의료과의 전공의 충원율 합계도 흉부외과 57.7%, 소아청소년과 67.3%, 비뇨의학과 79.0% 등으로 6개의 필수과목 모두 100%를 넘지 못했다. 이렇게 지속해서 악화하고 있는 필수진료과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지원 강화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신 의원의 견해이다.

또한 이 법안을 발의하면서 신의원은 ‘필수의료’의 정의에 부합하는 의견도 내놓았다.  "필수의료는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분야로, 필수의료의 비정상 작동은 국민건강에 큰 위협이 된다"면서 "대한민국 필수의료 살리기는 필수의료 전공의 지원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드디어 ‘필수의료’라는 단어가 정식으로 법안에 담길 모양이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도 국가 차원에서 나서서 필수의료를 챙겨야 한다며 ‘중증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시행을 요구했다. 응급·외상·심뇌혈관·중환자·신생아·고위험 등 적절한 처치가 지연될 경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영향이 큰 병들은 국가가 직접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게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이다.

엉뚱하게도 이번 사태이후 대책으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들도 있으나 의료계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현 구조에서 의사 수만 늘린다고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가 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왜곡된 환경에서는 오히려 의사수를 늘린 만큼 미용 분야 등 비급여, 저위험 분야 의사와 의료기관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이번 사태 이전에,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당시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도입을 공약한바 있다. "필수과목 전공의 수급의 고질적 문제점을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도록 국가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고 한다. 여야 할것없이 국민의 생명을 지킬수 있는 필수의료 지원제도의 제정에 시급히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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