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제 리도카인, 건선 치료 희망되나?
건선의 원인이 신경계 이상일 가능성 보여줘
마취제인 리도카인이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인 건선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국제학술지《피부연구저널(JID)》에 발표된 상하이자오퉁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미국 건강의학 웹진 ‘헬스 데이’가 15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건선은 은백색의 비늘로 덮여 있는 붉은색의 볼록한 반점이나 판으로 이뤄진 발진이 전신 피부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피부병이다. 피부 세포의 과잉 성장을 유발해 피부 표면에 쌓이게 하는 비정상적인 면역 반응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전미건선재단(NPF)에 따르면 8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건선으로 고통 받고 있다.
표준 치료법은 염증 발생 지점에 국소 코르티코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다. 심한 경우엔 자연광 또는 인공광에 피부를 노출시키는 자외선치료와 면역 체계를 억제하는 약물을 주사하는 방법도 있다.
상하이자오퉁대 의대의 왕홍린 교수 연구진은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시도했다. 수술할 때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감각 신경을 차단하기 위해 척추뼈 사이에 주사되는 경막외마취제 리도카인을 투약하는 것이다. 왕 교수는 “건선 환자들이 수술 중 경막외마취를 받은 후 상당한 증상 완화를 경험했다는 사례 연구가 있었는데 이는 건선을 유발하는데 신경계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진은 심각한 건선을 가진 4명의 환자를 모집했다. 2명은 전신에 건선 증세가 있었고 2명은 주로 다리에 증상이 있었다. 연구진은 2~5개월에 걸쳐 리도카인 치료를 4회씩 반복했다. 척추 바깥의 액체로 채워진 공간에 약물을 전달하기 위해 작고 유연한 튜브를 등 아래쪽에 삽입한 뒤 리도카인을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1회 치료 때마다 1시간 간격으로 4~7회 주사를 놓았다.
6개월 뒤 환자의 증상은 크게 완화됐다. 증상의 정도를 측정하는 표준점수를 기준으로 건선의 중증도가 35%~70%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개선효과는 최소 6개월 이상 유지됐다. 연구진은 임상시험의 규모가 작아도 ‘개념 증명’에는 충분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에 흥미를 보인 미국 베일러의대의 피부과전문의 앨런 멘터 교수는 “신경학적 문제가 있는 환자들의 사례 보고가 있었고, 신경 손상이 있는 피부 부위에서는 건선이 사라진다”는 임상관찰 소견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왕 교수 연구진은 리도카인이 도움이 되는 이유를 알기 위해 실험용 쥐에게 건선과 같은 상태를 유도한 다음 리도카인으로 치료했다. 건선에 영향을 받은 피부 부위에 감각신경이 과도하게 성장해 있었고 리도카인이 이를 감소시켜준다는 것이 밝혀졌다. 리도카인은 또한 신경 세포가 염증을 촉진시킬 수 있는 CGRP라고 불리는 단백질 방출을 억제했다.
풀어야 할 의문점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임상시험 대상이 된 4명의 환자들에게서 안전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지만 연구진은 위약그룹과 리도카인 치료그룹을 비교할 수 있는 대규모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왕 교수는 이 치료법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표준 치료법으로도 증세가 완화되지 않는 건선 환자에게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리도카인의 경막외주사는 일반적 피부과 의사가 할 수 있는 치료법은 아니라는 점에서 실용성은 떨어질 수 있다고 멘터 교수는 지적했다. 그럼에도 건선을 일으키는 신경계에 대한 연구는 심화될 필요가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jidonline.org/article/S0022-202X(22)00007-0/fulltext)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