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목소리를 얻기 위해 버린 것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인어가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포기한다. 진화인류학적으로는 반대다. 유인원과 인간의 차이 중 하나가 음절을 분절할 수 있는 명료한 목소리를 갖느냐, 아니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런 목소리를 갖기 위해서 오히려 복잡한 구조를 지닌 유인원의 성막이란 기관의 퇴화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 주 《사인언스》에 발표된 일본과 오스트리아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이다.
연구진은 인간을 포함한 44종의 영장류의 후두를 조사한 결과 인간은 성대의 작고 리본처럼 확장된 성막이라는 해부학적 구조가 유인원과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포유류는 목구멍에 속이 비어있는 튜브 형태의 후두라는 조직에 공기를 압축적으로 통과시켜 소리를 낸다. 후두의 주름진 부분이 진동하면서 다양한 레퍼토리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인간은 후두 내의 성대라고 하는 두 쌍의 주름이 이러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반면 다른 영장류는 성대와 연결되거나 인근에 위치한 성막이란 겹겹이 포개진 덮개를 진동시켜 더 다양하고 주파수 높은 소리를 낸다.
연구진은 인간이 더 명료한 소리를 사용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성막을 퇴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유인원의 복잡한 후두조직을 오히려 단순화시킴으로써 음조를 조절해 길고 안정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44종 영장류 중 인간만이 성막 퇴화하고, 두 겹의 성대로 발성
논문의 제1저자인 일본 교토대 인간행동 진화기원센터의 니시무라 다케시 교수(영장류학)는 “인간이 아닌 영장류의 복합한 음성구조가 오히려 진동을 정밀하게 조절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저자인 오스트리아 비엔나대의 W 테쿰세 피치 교수(행동인지학)는 “성막은 다른 영장류들이 인간보다 더 크고 더 높은 음조의 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지만, 그들은 목소리 절단이나 시끄러운 목소리 불규칙성을 더 흔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영장류는 인간, 유인원(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원숭이로 이뤄져 있다. 인간 영장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7백만 년~6백만 년 전에 인류와 가장 가까운 침팬지와 갈라졌다. 후두의 변화는 그 얼마 후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두는 얇은 조직이기 때문에 화석상으로는 발견되기 어렵다. 피치 교수는 후두의 단순화가 유인원의 특징과 인간의 특징을 공유한 385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니면 호모속이 처음 출현한 240만 년 전 무렵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피치 교수는 후두의 이러한 진화적 단순화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 자체가 말을 하게 해준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후두의 위치 변화를 포함한 다른 해부학적 특징들이 시간이 지나 축적된 결과로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사람과 다른 영장류의 소리 생성 메커니즘은 비슷하다. 폐에서 나오는 공기가 성대의 진동을 유도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성된 음향 에너지는 인두, 구강 및 비강을 통과하여 성도에 의해 지시된 특정 주파수의 필터링에 의해 제어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 에모리대의 헤럴드 구즐스 교수(영장류학‧심리학)는 "말과 언어는 밀접하게 관련이 있지만 동의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말은 소리를 기반으로 하는 언어 표현 방식이며 영장류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말을 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역설적이게도 진화적 단순화를 선택한 결과로 오늘날 인간이 구사하는 구어의 복잡성이 탄생하게 된 셈이다. 피치 교수는 “진화과정에서 때때로 ‘적을수록 더 많은 걸 얻는다’가 맞아떨어지는 흥미로운 경우가 있으니 어떤 특성을 잃게 됨으로써 새로운 적응의 문을 열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