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호르몬, 사랑과 보살핌 감정도 일으킨다?
미국 에모리대 동물실험결과 확인
남성호르몬은 경쟁심, 성욕, 공격성 등을 촉진시키고 여성호르몬은 사랑, 보살핌, 유대 등을 강화한다는 기존 통념을 뒤엎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환경에 따라 어떤 때에는 공격성을 북돋우지만, 어떤 때에는 사랑의 감정을 촉진한다는 것.
미국 에모리대 정신건강의학과 오브리 켈리 교수와 리처드 톰슨 교수(신경과학자)는 모래쥐(Mongolian gerbil) 실험결과 테스토스테론이 주어진 환경에 따라 공격성 또는 유대를 강화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영국왕립학회보B》 최신호에 ‘섹스와 공격성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켈리 교수는 “남편인 톰슨 교수와 함께 와인을 마시다가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테스토스테론이 과연 친사회적 행동은 약화시키는지 확인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면서 “모래쥐를 통해 확인했다가 놀랄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모래쥐는 중국 동북부와 몽골 등에 주로 사는 설치류로 군집생활을 하며 짝짓기가 끝나면 함께 새끼를 키우는 ‘일부일처 동물.’ 1년에 4회 출산할 수 있고 한꺼번에 4~9마리를 낳기 때문에 출산, 육아 등의 행태를 입증하려는 실험동물로 많이 쓰인다.
연구진은 모래쥐들이 짝을 맺게 도왔다. 암컷들이 임신하자 수컷들은 예상대로 평소처럼 껴안으며 애정을 표시했다. 연구진은 이를 확인한 뒤 수컷들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했다. 그러자 껴안는 행동이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진의 예상과는 반대로, 훨씬 더 자주 껴안으며 ‘모범 남편’의 모습을 보였다. 켈리 교수에 따르면 ‘슈퍼 파트너’가 된 것.
연구진은 1주일 뒤 ‘보금자리 침입 실험’을 시행했다. 임신한 암컷을 우리에서 꺼낸 뒤 수컷만 남겨둔 채 또 다른 수컷(침입자)을 넣었던 것. 켈리 교수는 “보통은 우리에 수컷 혼자 남겨두고 또다른 수컷을 넣으면 도망가거나 침입자를 쫓아내려고 하는데 테스토스테론을 맞은 수컷은 침입자도 기꺼이 껴안아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험대상인 수컷에게 다시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했더니, 우리를 침입한 수컷을 쫓아내거나 도망가는 행동을 보였다. 켈리 교수는 “갑자기 정신을 차려 침입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켈리 교수는 “테스토스테론이 사회적 맥락에 따라 공격성 또는 유대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려는 것을 확인했다”고 연구 의의를 부여했다.
연구진은 또 신경해부학적으로 암컷과 지내며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은 모래쥐는 뇌 시상하부에서 유대를 강화하는 옥시토신을 빠르게 증가시켰지만, 공격성과 밀접한 바소프레신은 증가시키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켈리 교수는 “두 호르몬이 뇌에서 사랑이나 유대 등을 함께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톰슨 교수는 “인간과 모래쥐의 호르몬은 성질이 같고, 호르몬이 작용하는 뇌 부위도 같다”면서 “이번 연구는 사람들에게서도 호르몬이 환경조건의 변화에 따라 어떤 반응을 형성하는지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국립과학재단(National Sicence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서 수행됐으며 미국과학진흥협회의 논문소개 사이트 ‘유레칼러트’에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