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죽고 싶다.. 요양병원의 그늘

[김용의 헬스앤]

요양병원-시설이 다시 코로나 집단감염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의 간병 지원이 강화되면 혼자서 건강을 살피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나는 집에서 임종을 할 수 있을까? 자식들에게 둘러싸여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인생을 마무리하는 장소조차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자택에서 임종을 맞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곳은 요양병원을 포함한 의료기관이다. 전체 사망자의 80%가 넘는다. 가족들이 많아도 혼자서 쓸쓸히 죽을 수도 있다. 요양병원-시설 측에서 급하게 ‘위독’ 연락을 해도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 숨을 거둘 수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익숙한 풍경이다.

요양병원-시설이 다시 코로나 집단감염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무더기 감염을 막기 위해 접촉 면회가 중단됐지만 위중증 환자가 또 이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 위중증 더블링(2배로 증가)' 현상도 요양병원-시설에서 출발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고령층 위중증 환자 증가 원인을 ‘감염취약시설’인 요양병원-시설에서 찾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요양병원-시설이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아프면 이곳을 가야 한다. 환자 본인도, 자식도 내키지 않지만 결국 요양병원을 선택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2022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5년(2020년 기준)이다. OECD 1위 장수국인 일본(84.7년) 다음이고 OECD 국가 평균(80.5년)보다 3년 길다.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장수 국가’다. 속을 들여다 보면 장수의 의미가 옅어진다. 무려 17.2년을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오래 살아도 앓는 기간이 너무 길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지니 요양병원-시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이미 초고령사회를 넘어선 일본도 간병과 죽음이 대화의 주제인 경우가 많다. 도쿄대 우에노 지즈코 명예교수(사회학)는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에서 생의 마지막을 시설이나 병원에서 보내지 말라고 주장한다. 홀로 집에서 편한 죽음을 맞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혼자 사는 노인이 급속히 늘고 있다. 주위의 시선도 과거 ‘불쌍하다’에서 ‘편해 보인다’로 바뀌고 있다. 부부나 1인 독거 노인의 생활 만족도가 가족과 함께 사는 고령자보다 높다. 한국도 이런 흐름을 타고 있다. 고령자라도 자식과 함께 살지 않는 비율이 늘고 있다.

우에노 교수는 ‘이상적인’ 죽음은 “자택에서 홀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 집에 살면서 방문 간병, 방문 간호, 방문 의료 등이 보장되면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간병 서비스가 필요할 때 국가에서 일정액을 지원하는 일본의 간병보험 제도다. 한국의 장기요양보험과 비슷하다. 일본 노인의 80% 가량이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간병인이 일주일에 2~3번 집을 방문해 간병과 함께 건강을 살핀다. ‘고독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홀로 죽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살아있을 때 고립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익숙한 내 집에서, 좋은 친구-이웃들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노후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이다. 자녀들에게는 부모 임종을 꼭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는 작별 인사와 감사의 말은 “부모가 아프기 전에, 귀가 들릴 때 자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를 ‘핑계’로 나이 드신 부모님을 자주 찾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요양병원 방문도 드문드문하다 병원 측의 “위독” 연락을 받고 달려가 의식이 없는 부모의 임종을 지키는 사례도 있다. 이런 ‘임종 지키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년의 나이가 되면 간병, 죽음, 요양병원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다.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이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내가 곧 마주할 현실이기도 하다.

요양병원은 나이 든 치매 환자만 있는 게 아니다. 뇌졸중(뇌경색-뇌출혈)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50~60대 환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이른 나이에 ‘위험한 곳’에 갇혀 있다. 내가 살던 집을 그리워 한다. 건강이 악화될수록 “집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어느 순간 요양병원 다인실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통상적’이 되고 있다. 숨을 거둘 때 곁에 가족이 없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시신을 늦게 발견하는 ‘고독사’와 다름 없다.

“나는 집에서 죽고 싶다”고 외쳐도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나이 들어 아프면 가족에게 ‘부담스런’ 존재가 되고 만다. 너무 서글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도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요양병원 다인실에서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반면에 자식이나 주변 사람에게 간병 부담을 주지 않고 혼자서 ‘자택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국가에서 방문 간병, 방문 간호, 방문 의료 등을 더욱 지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의사조력자살’ 존엄사 정책을 꺼내들기 전에 간병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부터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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