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 말 경청해야 하는 까닭은?
[박문일의 생명여행] ㉕의사의 소통기술 5가지
의사와 환자 간의 정보 교류나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면 의외의 낭패를 보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가 그 약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의사에게 말하지 않으면 추가 투여하는 약물 때문에 엉뚱한 진료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가 단순히 말해주는 정보보다는 환자가 가지고 있는 처방전을 확인해야 한다. 물론 환자도 병원을 방문할 때 다른 의사로부터 받은 처방전을 보유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의사가 묻지 않는 사항에 대하여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환자의 병에 대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정확히 전달 받을 수 있도록 질문을 상세히 해야 하며 환자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뉴욕타임스의 2015년 기사에선 미국 의료 기관의 서비스 품질을 인증하는 비영리 단체인 합동 위원회(Joint Commission)의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병원에서 심각한 건강 악화 결과의 70% 이상의 원인이 의사소통 실패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3명 중 2명은 정확한 진단도 모른 채 퇴원한다고 하며,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환자의 60% 이상이 진료실에서의 지시 사항을 잘못 이해했다고 한다. 또한 의사는 증상에 대한 환자의 설명을 평균 18초 간 듣는다고 한다. 미국의 통계이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병원에서는 당연히 우선적으로 해당 질환에 대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그러나 간혹 질환과 관련 없는 환자의 정서적 환경이나 주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실질적으로 병원에서는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의사가 환자에게 감정 이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게 된다. 예를 들면, 눈물을 흘리는 환자가 사랑하는 사람의 최근 죽음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의사의 다음 질문은 "어느 쪽 배가 아프지요?"인 격이다. 힘든 약물 투여를 포기하는 환자에게 "자기가 포기하는 데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기 전에 그 약물의 필요성을 성의 있게 설명하고, 환자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공감을 하면서 계속 설득하여 다시 약물을 투여하기까지는 많은 의사소통이 있어야 가능하다.
의학계에서 ‘대인 관계 및 의사소통 기술’에서 의사를 훈련하고 테스트해야 할 필요성이 공식화한 것은 1999년 미국 내과 전문가 그룹 (American Board of Medical Specialties)이라는 단체에서 시작됐다. 그들은 의사의 핵심 역량 중 하나로 의사소통 기술을 꼽았다. 미국의 각 의과대학과 레지던트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기술에 대해 학생들을 교육하고 테스트하기 시작했지만, 아쉬운 것은 의사가 교육을 마친 뒤 이에 대해 거의 평가되지 않았다고 한다.
설명하고, 경청하고, 공감하는 의사의 능력은 환자의 치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필자가 대학병원 재직 시 의대생들에게 가르친 몇 가지 팁을 소개해 본다.
첫째. 환자와 눈을 마주친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면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한다. 환자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요즘 진료는 모두 전자의무기록(EMR)이라는 챠트 시스템을 사용한다. 따라서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 보면서 진료실에 들어선 환자 쪽으로 얼굴도 안 돌리는 의사들이 많다. 환자보다 컴퓨터 화면을 보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환자 만족도가 어찌 될지는 자명한 일이다. 필자가 존경하는 어느 내과 선배는 진료실에 들어서는 환자마다 일어서서 맞으면서 환자의 손을 직접 잡고 진료의자에 앉힌 다음 자신이 앉는다. 실력도 으뜸이지만 소통 기술도 일등인 의사였다. 진료 전에 대화가 없어도 이러한 행동 만으로도 환자 스스로 의사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고 또한 돌봄을 받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둘째, 환자에게 우선 말할 기회를 준다.
환자에게 최소 1분 동안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진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의사의 말은 그 다음이다. 환자에게 공감을 나타내는 말과 제스처도 중요하다. 많은 환자들이 공감을 훌륭한 의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생각한다는 증거들이 있다. 공감하지 않으면 환자도 술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환자가 직접 말하기 꺼린다면 동행한 보호자를 동원하는 것도 좋다. 질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관련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치료 기간이 단축된다.
셋째. 환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라.
의사들은 가급적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전문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자신이 더욱 전문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의학 용어를 환자의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이 실력 있는 의사의 능력이다. 진료 후 환자 교육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집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 또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 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병원 외 관리가 질병 극복에 더욱 중요하다. 제한된 진료 시간에 미쳐 알려주지 못한 내용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글이나 그림 자료, 또는 영상으로 진료 내용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소통 방법이다.
넷째. 환자의 우려를 무시하지 말라.
막연히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걱정하지 마세요"를 남발하는 의사들이 많다. 그런다고 환자가 걱정을 하지 않는다면 다행한 일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환자가 왜 걱정을 하느냐이다. 그 이유가 확실히 없어질 때까지는 같이 걱정해 주는 것이 좋다. 이것도 공감인 것이다. 환자의 걱정을 막연히 최소화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환자에게는 오히려 무시하거나 무례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환자를 걱정거리가 아닌 것처럼 대하면 앞으로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섯째. 진료 후에는 환자에게 진료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하라.
그날의 진료 내용을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정리하여 알려주고 다음 계획을 알려준다. 그리고 "잘 이해 하셨는지요?" 또는 "다른 질문이 있는지요?"라는 질문으로 진료를 마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미소와 함께 환자를 배웅한다.
건강 유지와 질환 극복에 관한 한 환자는 의사와의 정보 공유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알고 보면 태어난 뒤 사람의 일생은 평생 정보 공유의 연속선 상에 있다. 사람을 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가? 삶의 거의 모든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각종 교육은 선생님과의 정보 공유이며, 직장에서는 모든 동료와 정보를 나누고 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정보 공유를 하고 있으며 동물과 식물도 정보 공유를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생물과 무생물도 정보 공유를 하고 있다는 양자물리학 이론을 들추지 않더라도 사람과 사람 간의 정보 공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박문일 동탄제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