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뿌리고, 욕하고…치매 알리는 뜻밖의 징후들
[권순일의 헬스리서치] 뇌 변화로 묘한 증상 발생
치매는 정상이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의 인지기능이 상해서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증상이다. 치매 원인은 알츠하이머병이 55~70%를 차지한다. 이외에 뇌혈관 및 퇴행성, 대사성, 내분비, 감염성 질환이 있고 수두증, 뇌종양 등도 발병 원인으로 꼽힌다. 치매의 일반적 증상으로는 기억력과 언어 장애, 시공간 장애, 성격 변화 등이 있다. 특히 기억 상실, 혼란 및 방향 감각 상실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가장 잘 알려진 세 가지 징후다.
최근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치매 상태를 알리는 수십 가지 미묘한 행동 변화가 있다. 치매의 가장 파괴적인 증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지저분한 옷을 입기 시작하고, 주차를 엉망으로 할 수 있다.
지난 주 과학자들은 또 다른 잠재적인 징후를 발견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에 따르면 낯선 사람에게 돈을 선뜻 주는 노인들이 알츠하이머 치매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데일리메일 등의 자료를 토대로 치매 위험을 알리는 뜻밖의 징후에 대해 알아본다.
◇돈을 선뜻 내준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와 이스라엘 바일란대 연구팀은 재정적 이타주의가 이 질병의 첫 단계에 있는 것과 상당히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70세 전후의 노인 67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각 대상자에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다른 사람과 짝을 짓게 하고 10달러(약 1만3000원)를 현금으로 줬다. 또 대상자들의 인지 상태와 알츠하이머병의 잠재적 위험을 판단하기 위해 신경학적 검사를 했다.
연구 결과 이전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기꺼이 주는 사람들의 인지 상태가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을 암시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알츠하이머병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 연쇄적인 효과를 일으켜 사람들이 현금을 나눠주는 것에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돈을 다루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징후 중 하나로 생각되며 이번 연구는 그러한 개념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Increased Financial Altruism is Associated with Alzheimer’s Disease Neurocognitive Profile in Older Adults)는 《저널 오브 알츠하이머스 디지즈(Journal of Alzheimer's Disease)》에 실렸다.
◇옷을 제대로 못 입는다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을 때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것과 날씨에 맞는 옷을 입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영국 켄트대와 요크대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치매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없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2018년 《소시올로지 오브 헬스 앤드 일리니(Sociology of Health and Illness)》에 발표된 이 연구 결과(Dressing disrupted: negotiating care through the materiality of dress in the context of dementia)는 켄트 지역의 3개 요양원과 15개 일반 가정에서 32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또 치매 환자의 옷 입는 법에 대한 의견을 얻기 위해 가족 간병인과 친척 28명, 요양원 직원 28명을 인터뷰했다.
이 연구에 인용된 가족 간병인 멜리사는 그녀 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을 때 입는 옷차림을 바꾸기 시작한 참상을 묘사했다. 그녀는 “우리 아빠가 지저분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절대로.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지저분한 옷을 입고 앉아있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복장 변화는 자신의 옷 잊어버리기, 옷을 입기 힘들게 하는 근육 경직, 갑작스러운 떨림 동작 등 다양한 치매의 영향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운전을 잘 못하거나, 주차를 엉망으로 한다
치매가 진행되면 운동 능력과 사고에 영향이 미쳐 자동차 운전 능력이 현저하게 악화될 수 있다. 치매는 운동이나 인지 반응을 늦춰 주차를 어렵게 만들고 결국 운전을 포기하게 만든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1년 동안 139명의 운전 습관을 분석해 치매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대상자 중 절반은 초기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진단 받았고,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 않았다.
연구 결과 치매가 있는 사람들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운전을 아주 느리게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변화가 너무 뚜렷해 운전만으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가지고 있는지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고, 이 모델은 90%의 연구 대상자 사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GPS driving: a digital biomarker for preclinical Alzheimer disease)는 《알츠하이머스 리서치 앤드 세러피(Alzheimer's Research and Therapy)》에 실렸다.
◇마구 욕설을 내뱉는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또 다른 징후는 부적절한 상황에서 욕설을 하는 등 입이 거칠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아이들 앞에서 욕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뇌 속 여과 장치가 그다지 강하지 않아 더 많은 욕설을 내뱉게 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 연구팀은 ‘f’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만들어보라고 요청받았을 때 치매가 있는 사람들의 18%가 ‘f**k’이라는 비속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1분 안에 ‘f’, ‘a’, ‘s’로 시작하는 단어를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많이 만들라는 요구에 32명의 치매 환자 중 6명이 ‘f**k’과 ‘s’에 해당하는 단어 ‘s**t’라는 비속어를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The Use of Profanity During Letter Fluency Tasks in Frontotemporal Dementia and Alzheimer's Disease)는 《코그너티브 앤드 비헤비어럴 뉴롤로지(Cognitive and Behavioral Neurology)》에 실렸다.
◇자제력이 없어진다
치매 환자의 뇌가 변화함에 따라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능력이 퇴화하는 경향이 있다. 무례해지거나, 부적절한 말을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거나, 이전에 했던 것보다 더 자주 낯선 사람들에게 얘기를 건네기 시작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뇌의 전두엽에 있는 전전두엽 피질이 줄어들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전두엽은 정서 제어를 담당하는 부위다.
미국알츠하이머협회는 “이러한 상황들은 치매에 걸린 사람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매우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고, 충격적이거나 좌절감을 줄 수 있다”며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행동이 왜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