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요양병원, 연명치료.. 중년들의 눈물

[김용의 헬스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난 요즘 외출이 어려워... 어머님이 치매 증상이 와서...”

친구의 전화를 받은 50대 주부 A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친어머니처럼 따르던 분이 치매라니... 기억력에 좀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친구는 어머님을 집에서 모시겠다고 했다. 요양병원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당분간 외부 약속을 못 잡는다고 했다. A씨는 힘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증상이 악화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중년에 접어들면 여러 건강 문제와 마주한다. 본인 뿐 아니라 늙으신 부모님 건강이 악화되는 시기다. 중년 부부가 양가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얘기를 자주 한다. 이미 투병 중인 분들도 적지 않다. 거동이 불편한 뇌졸중(뇌출혈, 뇌경색) 후유증이나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이 상당수다.

뉴스에 자주 나오는 간병, 요양병원 이야기는 중년에게는 현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온갖 어려움과 마주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유행 2년여 동안 ‘간병 지옥’이란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집에서 간병하는 분들은 매일 몸이 녹초가 된다. 코로나 감염 위험에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직업 간병인을 채용하면 치솟은 간병비에 월급이 다 나간 경우도 있다.

코로나 유행 기간 동안 국내 사망자의 절반이 요양병원-시설 등에서 나왔다. 정부가 감염취약시설로 지정할 정도다. 평소에도 폐렴 등 감염 위험이 높은 곳이다. 요즘 간병인에게 여생을 맡긴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울해진다. 온갖 생명연장 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은 또 어떤가. 건강할 때는 품위 있게 살았어도 병들면 ‘품위’도 잃어야 하는 것일까?

[사진=게티이미지]
최근 연명의료를 넘어 ‘조력 존엄사’ 법안까지 국내에서 발의됐다. 환자 본인이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제도다.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에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대상이다. 조력 존엄사는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의료와 윤리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도록 했다. 조력 존엄사를 도운 담당 의사는 형법상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지 않도록 법률안은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이 실제 시행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법안 통과를 담당하는 국회 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존엄사’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거워질 것이다.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조력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지 관심이다.

일부 설문조사에서는 조력사 찬성비율이 매우 높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지난해 성인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안락사 또는 조력사법 찬성비율이 76.3%나 됐다. 5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50%였다. ‘좋은 죽음’ ‘고통의 경감’을 찬성 이유로 꼽은 이가 많았다. ‘안락사’는 의료진이 환자가 사망에 이르도록 약물 등을 투약하는 것이고, ‘조력 존엄사’(의사조력자살)는 환자가 의료진에게 약물 처방을 안내받은 후 삶의 마감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른바 ‘소극적’ 존엄사도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법적으로 중단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이 시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한 사람이 20만 명이 넘었다.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도 130만여 명이다.

품위 있는 삶 못지않게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모두 인간의 존엄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은 거의 풀렸지만 요양병원-시설에선 지난 4월까지 유리 벽 사이로 겨우 면회를 할 수 있었다. 가족 간 손도 잡을 수 없었다.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임종 임박’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간 경우도 적잖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지난 2년 간은 이런 의문을 품게 한 장면들이 속출했다. ‘조력 존엄사’ 법 제정에 앞서 간병, 요양병원-시설, 연명의료 문제를 현실에 맞게 고치고 개선해야 한다. 제대로 간병이 가능하면 아직은 끔찍한 ‘의사조력자살’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국회, 정부는 가족들이 최선을 다해 간병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 많은 환자들이 정든 집에서 세상을 하직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낯선 요양병원-시설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현실이다. 간병비를 대폭 낮추고 성실한 직업 간병인을 많이 양성해 집에서 간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요양시설에서 장기간 가족을 못보다 ‘임종 임박’ 연락을 받고 달려온 자녀, 손주의 손을 잡는 비극은 줄여야 한다.

간병은 곧 내가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때 자식들의 눈치를 봐야 할까? 늙고 병들어 요양병원-시설로 향하던 날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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